떠버리의 소신(所信)
떠버리의 소신(所信)
  • 승인 2017.10.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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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낀다. 삶은 이런 저런 이유와 관계를 들어 누군가와 어김없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불편하다. 가령 초등학교 여교사가 초등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건과 문인들이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거나 의혹이 제기될 때 퍼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조명탄이 밤하늘을 밝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전파된다. 언론사들에 제보를 하는 네티즌들의 활약은 온라인상에서 가히 눈부시다. 그러다보니 신속한 보도를 내세워, 특종을 위해서라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도가 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필자도 이번에 이와 관련해서 박진성 시인, 본인으로부터 언론사를 통해 정정 보도를 요구받은 바 있다. 그랬다. 이래저래 글을 쓰는 사람이나 교단에 서는 사람은 ‘부적절한 것’들에 대해서 암묵적인 압박과 통제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심이건 가식이건 대중들에게는 명예로운 직업으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고 표현되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타인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하기 때문이다. 박진성 시인이 이의를 제기한 필자의 칼럼 ‘도화, 문단에 부는 바람’(대구신문 2016년 10월 26일 게재)을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당시 언론보도의 신뢰를 바탕으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쓰인 것이 명백해 보인다. 성폭력사건에 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건이니, 당사자로선 억울할 만하다. 그나마 오피니언이어서 다행이다. 개인의 생각이고 해당 신문사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니 널리 이해를 바라는 마음, 지면을 통해 전한다.

부대끼고 싶지 않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과는 부대끼고 싶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저마다의 논리와 감성으로 풀어가기 때문에 그 부대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모전으로 그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보도된 사실만으로 글을 쓴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반박 또는 해명을 위한 치열한 고투(苦鬪)를 벌이고 있었다. 과연 유명작가답게 그의 글은 외롭고 쓸쓸한 심경을 일상을 통해 담담하게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던 것은 그의 반박문들에 첨부된 당사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면서였다. 법적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캡처된 내용을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떠버리가 된 심정이다. 습관처럼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떠버리’라고 한다. 필자가 인기작가가 되어본 적이 없는 지라 우쭐해 본 기억은 없지만, 문학을 배우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하는 데,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유혹들을 이겨낼 자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생계를 빙자해서 원고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수업료를 받아 챙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거만해질 수도 있는 유혹,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미루어볼 때 사적인 감정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아직은 없다. 누구보다 자신이 있으면서도 막상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쉽게 무너지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아직 필자의 수준이 그에 다다르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다.

요즘은 개인의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할 기회가 많아졌다. 앞서 언급한 블로그를 비롯한 온라인상에서는 물론이고 이와 연계한 모바일 프로그램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한 때 온라인 모임 ‘밴드열풍’이 전국의 동창들은 물론이고 해외에 있는 친구들까지 불러들이는 이변도 생겨나지 않았던가. 그 동창밴드를 통해 조장된 불륜은 얼마나 많았으며, 사기, 폭력 등 강력범죄도 그 수만큼이나 많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차라리 졸업앨범을 뒤적이며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남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나 같은 마음’으로 살아오고 성장했으리란 막연한 믿음 하나만으로 다시 만났을 때의 실망감도 느껴본 이가 적지 않으리라 여긴다. 물론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한 동창을 만났을 때의 다행스러움도 적지 않았겠지만, 원래 ‘미담’보다 ‘악담’이 더 빠른 법이다. 좋지 않은 소문은 더 좋지 않은 소문을 잉태하고 무책임하게 어느 시점에 사생어(私生語)를 출산해 버리고 불명예스러운 의혹으로 성장하다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명을 다 한다.

인간은 외롭다. 홀로 태어나서 외롭기도 하고, 홀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더욱 외롭다. 그래서 불안하다. ‘나 홀로 남겨질 지도 모르는 공포’를 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임에 가입을 하고 ‘나를 외롭게 만드는 모임’은 과감하게 탈퇴하기도 하며, 이도 저도 마음에 안 들면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그 모임조차 완전히 새롭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부대끼지 않고 살아가려면 ‘나’와 상반되는 생각을 하더라도 ‘부대낌’으로 인지하기 보다는 ‘의지하려는 자의 몸짓’으로 이해를 하고 접근하는 것이 맞다. 누군가 내게 기대려고 할 때 어깨를 내 줄 수 있어야, ‘나’도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적어도 떠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은 또 다른 부대낌을 양산한다. 특히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을 직업 삼은 이들은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번 경우를 여러분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동안 방송에서 보도된 내용을 근거해서 한 때나마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글을 게재한 필자의 소신이 한 작가의 명예에 손상이 갈 만큼 ‘떠버리의 소신’에 불과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옳다. 두 번 다시 번복하는 이변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더 이상 이런 식의 부대낌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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