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해프닝
한가위의 해프닝
  • 승인 2017.10.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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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추석 연휴의 평화로움이 깨어진 것은 한 학회 밴드에 올라온 한 편의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밴드의 회원 한 분이 미국의 태극기 동지가 보내온 것이라며 올린 글이었다. 태극기 동지라는 말에 기분이 좀 이상했지만 글을 올리신 분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그런데 2017년 9월 미국 동부 명문대학의 입학식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되는 그 글은 기대와는 달리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017년 9월에 일어난 것이라고 소개된 입학식 일화는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필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흔적이 글의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글의 제목도 오만함이 묻어난다. 그 글의 필자도 마침 아는 분이었지만 그 글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추석 연휴의 평화로움을 깨고 말았다. 그리고 그 글에 내가 부정적인 댓글을 올리자 여러 댓글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에 요즘 가짜 뉴스가 많은데 혹시나 하여 그 글의 원문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분의 글에 인용된 일화는 2017년 9월에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2021년 9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상적인 일이었다. 그 글의 필자는 앞으로 몇 년 후, 미국 동부 명문대학 입학식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을 상상하여 그 글을 쓴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옮기신 분이 원문의 날짜를 2017년 9월로 날짜를 바꾸어 다른 분들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원문의 글을 2021년 9월, 미래에 있음직한 상황으로 고쳐서 읽으니 어색한 문장이 비로소 자연스러워졌다.

한바탕의 작은 소동은 결국 원문의 날짜를 누군가가 변경했음이 밝혀져 진정되었다. 그러나 소동은 잠잠해졌는데 마지막 추석 연휴를 보내는 내 마음은 소동으로 인한 불편한 잔상이 남아 있다. 최초에 그 글을 전달하려고 했던 분은 어떤 이유로 원문의 날짜를 바꾸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신문의 기사에 나온 날짜가 오타였다고 생각하고 수정했을 가능성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로 소개한 그 일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최근에 일어난 일로 착각하여 선의로 날짜를 수정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는 그 입학식 일화가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호소력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들의 주장에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라 할지라도 특정 집단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분이 쓴 글을 자기 마음대로 수정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 집단의 의도와 도덕성을 말해 주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와 안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주장하는 방법과 근거가 적법하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진다.

또 원문을 수정하는 일은 필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소동에서도 날짜를 변경한 사람은 원문 필자의 글을 매우 어색하게 만들었고 원문 필자를 있지도 않은 일을 실제 발생한 것처럼 기사화한 비양심적 언론인으로 보이도록 했다. 실제로 원문 필자를 아는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그 분의 글이 조잡하다고 생각했고 양심을 팔아 글을 쓰는 언론인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날짜를 수정함으로 이상해진 그 글의 내용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감동한다는 것이다. 거짓과 오류에 근거한 주장에 쉽게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지적 구조가 탄탄하지 못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원문의 날짜가 바뀐 채 전달된 그 글이 이번 추석 연휴에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읽혔을까?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한가위의 작은 소동은 연휴 뒤의 작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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