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리는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
[문화칼럼] 우리는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
  • 승인 2018.01.10 10: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그의 글씨는 꽤나 유명하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그의 한글흘림체 글씨 문양을 입혀 만든 옷이 인기였다. 해서 그를 만난 김에 사인을 부탁했더니 예의 멋들어진 글씨체로 써준 글이 ‘우리는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였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니 “북한강과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이 되잖아유. 두 강이 깊은 바다 그리워 흐르다 남과 북을 버리니 한강이 된거쥬”라는 대답이 돌아 왔다. 그의 이름은 소리꾼 장사익이며 이현주 목사가 쓴 시에 직접 엮어 만든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장사익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젊은 소리를 유지하며 매 공연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경향 각지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의 인기는 아직도 뜨겁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우리나이 마흔 여섯에 소리꾼으로 세상에 나왔다. 열여섯 번째 직업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꾼으로 불리는 장사익은 열다섯가지 직업을 거치는 동안에도 음악적 자양분은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전주대사습놀이와 전국민속 경연대회 등에서 대통령상, 장원 등을 수상한 그의 음악적 내공은 하루아침 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 하며 주류 인생이 되지 못한 가운데서도 음악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단독 리사이틀을 열게 되었고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나는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그의 첫 번째 앨범 ‘하늘가는 길’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며 가끔씩 듣곤 한다.

작년 9월 수성아트피아의 ‘우리소리’ 콘서트는 장사익 티켓파워 덕분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였다. 자신의 얼굴 주름은 웃어서 생겼다는 그의 말처럼 주름 가득한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장사익은 그로 인해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관객을 향해서든 공연 관계자든, 주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매우 빠르게, 정확히 알고 아주 따뜻이 열린 마음으로 그의 노래와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꽃처럼 생겨난 작은 생명이 반갑다. 목말라 지치고 방황할 때 어깨를 내어주던 친구들에게 고맙다. 목 놓아 원 없이 노래하는 인생이 기쁘다는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이년 전쯤 성대에 문제가 생겨 한 동안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그때 심정은 “노래를 부르던 하루하루는 꽃이었고, 노래를 못하는 날들은 눈물 이었다” 고 했다. 수술 후 ‘꽃인 듯 눈물인 듯’무대를 통해 성공적 복귀를 한 그는 아흔 넘어도 무대 위에서 까불며 살고 싶단다. 성대 수술 후 침묵의 시기를 보내던 중 멕시코 가수 차벨라 바르가스(Chavela Vargas)가 아흔 둘에 부른 노래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들이 부르는 것처럼 힘도 기량도 떨어지고 음정 뭉개지고 목소리도 안 나오지만 그때 부르는 노래가 진짜다. 그래서 그런 무대를 꿈꾼단다.

여러 직업을 전전 하면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면서도 그는 세상 원망을 하지 않았고 좌절도 하지 않았다. 다 자신이 못 배우고 부족해서 그렇다며 툭툭 털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찾은 길에서 그는 그 행복을 홀로 누리지 않고 많이 비우고 덜어준다. 그는 공연 직전 임종을 앞둔 사람가족의 부탁으로 병원을 찾아 의식이 있는지 조차 불확실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러 그 분이 편히 세상을 떠나게 했다. 지난해는 일본 고베 요양원에 있다는 오랜 팬을 위해 그곳을 찾아 한바탕 노래판, 춤판을 벌였단다. 이런 장사익의 인생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우리는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버리고 비우면 더 풍요로워지고 기쁨이 커진다는 것을, 그런데 그것이 참 잘 안 된다.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한때 일주일에 한 번씩 버리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이것저것 세간을 버리고 나면 그것 배 이상의 기쁨이 생긴다는 것을 늘상 경험 한다.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욕심과 미움으로 가득한 마음에 힘들어 하면서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비워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해가 바뀌었는데 한번 시도는 해봄직 하지 않을까? 버리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아! 버리고 비우기에 성공 할 수 있을까? 이 두툼한 뱃살, 그리고 빛바래고 녹슨 마음을 과연 ···.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