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니 가을이다
안에서는 몰랐던 어긋난 사랑
뒤로 물러나는 가을 덩굴 사이
인간보다 오랜 세월
음양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호숫가에 낚싯대 드리운 낚시꾼
졸음은 자연을 닮아가고
천 이백 짝사랑
뒤로 한 발짝 물러선 서투른 질투
손바닥 닮은 낙엽처럼 쪼르르 따라 나선다
버스는 벼를 안고
가뭄에 갈라진 틈새로 사라져 가고
부르터진 석류 알 노을보다 붉어
들판을 통째로 물들이며 가을을 익힌다
가을이 되어가는 맘 늦깎이 콩은 알려나
붉은 홍조는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정을숙 = 경남 마산출생
한국시민문학협회 부회장
낙동강문학 창간호 동인
시집 <내 마음이 고장 났다>
<해설> ‘나오니 가을’이라는 이야기는 뭔가를 깨달은 사람들의 언어일 것이다. 나를 잃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애환 같은, 그러기에 깨어있는 나를 찾으려 강태공을 선뜻 따라 나선 것이리라. 가을은 이미 와 농익어 있건만 나를 잃고 살아온 시간으로 가을이 와있음을 이제와 알게 된 것이다. ‘나오니 가을’인데 그 속에 빠져들 시간은 너무 짧아져있어 아쉽기만 하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