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파리로 가는 작은 숲길
[문화칼럼] 파리로 가는 작은 숲길
  • 승인 2018.03.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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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흔히들 그림을 크게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멀리보고 거침없이 달려야 성공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찬찬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들이 보이고, 거기서 고요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을 누릴 때가 있다. 디테일이 완성도를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고 본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작품을 텍스트로 했다. 이가라시는 도호쿠 지방에서 자급자족 했던 자신의 생활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야기 전개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했다. 반면 임순례 감독은 사람과의 관계를 따뜻이 표현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감독 스스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는 요즘, 관객들에게 편안하고 기분 좋은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 요리보다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두고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의 그것 못지않게 음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현실에 지쳐 어느 겨울날 고향에 돌아온 혜원은 텅 빈 옛집에서 혼자 겨울과 사계절을 나며 소소한 일상을 꾸려간다. 얼마 남지 않은 쌀로 밥을 짓고 집 앞 밭의 꽁꽁 언 푸성귀로 끓인 나물국은 혜원의 시린 마음을 녹여 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눈을 치운 뒤 언 몸을 녹여주는 수제비 한 그릇은 성찬이며, 반죽하고 숙성시키기 위해 깨끗한 천으로 덮어두는 요리의 과정은 정갈한 아름다움이다. 막걸리를 담가 그것이 익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가까이 보여주는 영상은 잔잔한 기쁨이다. 아카시아 꽃잎을 따서 맑은 기름에 튀겨 낼 때 그 꽃은 활짝 더 피어난다. 잘 익은 튀김을 바싹 베어 물 때 나는 추억에 잠겼다. 예전 나의 군 생활 땐 그것이 오월의 큰 호사였다.

이 영화의 미덕은 단조롭기만 한 시골 생활에서 노동을 통하여 소출을 얻고, 정성어린 손길을 다하는 수고로움 끝에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맛난 음식을 얻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요리로 인해 풀어지고 연결되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에 나오는 송충이, 개구리 그리고 달팽이조차 촬영 후 자연에 돌려보냈다는 것은 ‘리틀 포레스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조용히 웅변 한 것이라고 본다.

보통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영상에 담는 수수한 모습의 임순례 감독과는 달리 영화계의 화려한 로열패밀리가 있다. ‘대부’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등을 연출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그의 부인 엘레노어(Eleanor)코폴라 . 그리고 대부3에 마이클의 딸로 출연한(지금은 감독으로 성공했다)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일전에 잔잔한 화제를 모은 프렌치 로드 무비 ‘파리로 가는 길’이 엘레노어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이다. 이 영화는 건강상 남편과 동행하지 못하고 그의 동료와 칸에서 파리까지 뜻하지 않은 여행을 하게 된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세계적 영화제가 열리는 칸(Cannes)을 시작으로 라벤더 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경관의 액상 프로방스(Aix-en Provence)를 거쳐 최초로 영화를 제작한 뤼미에르(Lumiere)형제를 담은 동명의 박물관과 프랑스 요리의 전설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이름을 딴 시장 등이 있는 리용 그리고 파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광이 주인공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다양한 와인과 시장에서 만든 치즈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프렌치 푸드와 디저트다. 곧장 파리로 가고자하는 앤의 바람과는 달리 자크는 ‘파리는 없어지지 않는다’며 그녀에게 이렇게 프랑스의 미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리틀 포레스트’와 같이 이 영화 역시 느림과 음식에 대한 예찬을 한다. 앤의 취미인 매크로 촬영, 자크의 계절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 자연과 와인에 대한 해박한 설명은 세상을 미시적 관찰과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크게 멀리 보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다. 하지만 이런 가치를 아름다운 결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느리게, 가까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두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그리고 낯선 프랑스 여행기가 천천히 마음을 담아 호흡하는 것과 가까이 바라보는 봄으로 해서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 왔기에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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