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훔친 父情, 긴급사회복지망은 뭘 했나
어묵 훔친 父情, 긴급사회복지망은 뭘 했나
  • 승인 2017.06.13 21: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남루한 행색의 A씨는 10여년 전 부인과 헤어진 뒤 중학교 3학년인 딸 B양과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아픈 몸을 이끌고 막노동 일을 하던 A씨는 형편이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딸이 배고프다는 말에 어묵 세 봉지(3만원 상당)을 훔쳤다가 주인에게 잡혔다.

경찰은 A씨의 집에서 또 다른 피해품이 있는지 조사하던 중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A씨가 쓴 유서였다. “생활고를 겪고 있어 좌절감이 더 크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죽고싶은 마음 뿐입니다.” 유서의 내용이었다. 유서에는 딸 B양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실상의 단편이 적혀 있었다. “딸 아이가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교통비가 없어서 4km 거리가 되는 학교를 1시간씩 걸어서 등하교 하고 있는 실정…”

A씨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식품가게 주인은 A씨를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경찰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안 될 일이었다. A씨의 범행이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닌 절도죄에 해당 돼 처벌은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딱한 소식을 전해들은 성서경찰서가 직원들이 A씨 돕기에 나섰다. 생활범죄수사팀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A씨에게 쌀 20kg과 반찬을 지원하고 딸에게는 14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와 용돈 5만원을 전달했다. 해당 주민센터와도 연계해 A씨에게 생활지원금 등 총 90만원을 긴급지원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 매달 4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제 A씨나 B양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웃의 온정과 행정기관의 기민한 조처가 아니었던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불만스럽다. A씨가 어묵을 훔치고 들키지 않았다면 긴급생활지원금은 물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도 못했을 것이 아닌가. 대구시 8개 구·군이 위기가정을 돌보는 긴급복지시스템을 가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셈인가. 더구나 지난 2월 대구시 ‘읍면동 복지허브화 사업’으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믿어지지 않는다.

대구시는 읍면동 복지허브사업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긴급 점검하기 바란다. 가난에 못이겨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A씨 같은 일이 더 이상 없도록 명실상부한 긴급복지시스템을 가동해야 할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