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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에밀레를 엄마의 품으로

기사전송 2016-01-21, 21: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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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표
사회 2부
제야의 종소리 중에서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 신종(神鐘·에밀레종)의 소리만큼 그리워지는 것은 없다.

이는 천지를 창조한 우주의 신비만큼 우아한 에밀레의 아름답고 장엄한 종소리 또한 신비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신종은 어머니를 찾다 울다 지친 듯 울지도 못하고 혼자 외로이 서 있다.

성덕대왕 신종은 1992년 제야의 종 타종 후 1996년 학술조사와 2003년 개천절 타종을 마지막으로 보존이란 명분으로 타종이 중단된 상태에 있다.

신라 혜공왕 시기인 771년 완성된 이 종은 경주 북천(알천)변 봉덕사에 안치됐으나 북천의 홍수로 절이 사라지면서 매몰됐다 발견돼 1460년 영묘사로 옮겨졌다. 이어 영묘사마저 소실되자 1506년 경주읍성의 종루에 안치돼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고 전해진다.

1915년 경주문화원(당시 경주박물관)으로 이전돼 보존·전시되다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의 개관과 동시에 박물관 야외에 마련된 8각 지붕의 시멘트 종각에 걸려 전시되고 있다.

이 종의 이동 경로를 보면 마치 자식이 어머니를 잃고 떠돌아다닌 고아처럼 보인다. 당시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에게 봉덕의 어머니가 가난으로 시주할 것이 없자 대신 봉덕을 시주했다는 전설은 이의 아픔을 더하게 한다. 이를 보면 봉덕사가 에밀레의 어머니고 에밀레가 봉덕사의 아들이라 한들 어느 누가 이설을 달겠는가.

혹자는 봉덕사의 위치가 불분명해 재건이 불가하다고 한다. 자식을 둔 어머니가 어디 가서 살던 어머니는 어머니다. 에밀레를 더 이상 고아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 종은 그냥 종이 아닌 신종(神鐘)이 아닌가. 신을 경배하고 참배하는 마음으로 이 종을 감상해야 한다.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창고의 보관물 쳐다보듯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후손들의 모습에서 신라 선조가 남긴 숭고한 문화유산의 가치는 소멸되고 있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그 아버지인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742년 황금 12만근으로 대종(大鐘)을 만들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한다. 이후 29년 만인 771년 1월 13일 그의 아들 혜공왕(36대)이 이를 완성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라고 명명했다.

삼국유사는 신라성덕왕이 삼국통일의 선봉에 섰던 태종무열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봉덕사를 짓고 7일간 인왕도량(仁王道場)을 개설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이 절이 홍수로 인해 북천에 묻히게 된다. 이로 인해 1460년(세조 5년) ‘봉덕사의 신종’은 영묘사(靈妙寺)로 옮겨지면서 방랑을 계속했다.

이처럼 봉덕사와 신종(에밀레종)은 3대 왕에 걸쳐 완성된 엄청난 걸작이요 1천245년 전 신라 선조가 남긴 고귀한 유산이다. 에밀레종이 국보라면 봉덕사는 국모가 아닌가, 어머니(봉덕사)의 품에 안긴 에밀레(종)의 모습이 제 모습이요 이 어머니 품에서 우는 에밀레의 울음소리가 제 울음소리일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신라 왕궁이 복원된다 해도 완전한 옛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에밀레종과 그 종소리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 경주도심 어딘가에 있었을 봉덕사를 이제라도 다시 지어 에밀레를 엄마의 품으로 보내야 한다. 천년 왕도의 부활은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고도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줄을 이을 테니까….
jc755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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