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주차 인심
골목길 주차 인심
  • 승인 2016.04.1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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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구청으로부터 우편물이 날아왔다. ‘반송불필요’라는 파란글자가 찍힌 봉함엽서였다. 아차! 싶었다. 노점상의 채소를 사기 위해 도로 가에 주차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생활하기에 알맞은 동네에는 시장을 중심으로 이면도로가 있고, 한 블록 건너 대단위 아파트 옆으로 왕복7차선의 간선도로가 있다. 그리고 간선도로의 가장자리 햇볕이 잘 드는 인도에는 채소와 과일을 비롯한 호떡, 붕어빵, 게장 등 먹을거리와 비누, 양말, 방석, 가방 등 소소한 가정용품까지 노점상이 즐비하다.

파는 사람이 있어서 사는 것인지, 사는 사람이 있어서 팔러 나오게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고 있으니,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는 자연스러운 생활환경으로 터전을 잡게 된 것이다.

그날따라 시장을 둘러싼 골목길에는 차를 세워둘 공간이 없었다. 뱅글뱅글 두 바퀴를 돌다가 장보기를 포기하고 돌아갈 참이었다. 골목을 벗어나 간선도로로 나오는데, 빗금을 치듯 가지런히 서 있던 자가용 한 대가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쾌재를 부르며, 이빨 빠진 듯 빈자리가 생긴 그곳에 차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반찬가게에서 시식을 하기도 하는 등 한껏 여유를 부린 것이었다.

다른 동네 골목도 사정은 비슷하다. 말이 나온 김에, 골목길 주차 인심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아야겠다.

자주 찾는 상가 골목에는, 들쭉날쭉 3층짜리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2층과 3층은 주거용이 많고, 1층은 대부분 상업용이다. 편의점, 미용실, 피부관리실, 떡집, 음식점, PC방, 마트, 주단, 공구, 설비 등 생활형 업종들이 많다. 특정 시간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아이들을 태운 노란 승합차도 드나들고, 마늘이나 고추 또는 달고 맛있는 밀감을 사러오라는 스피커를 매단 화물차도 보이는, 사람 사는 동네다.

간선도로와 연결된 골목에는 주차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고, 건물 앞이나 옆에 임의로 주차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어느 곳이든 빈자리가 있으면 주차나 정차를 할 수가 있으니, 편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동차 대신 큼직한 폐타이어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흰색과 노란색 물통이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또 며칠 후에는 주차금지 팻말을 끼운 둥그런 콘크리트 구조물이 등장을 했다.

엄밀하게 따질 필요도 없다. 골목길은 사유지가 아니라 공공용지로 다른 차량의 통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편의상 주차를 하는 것이다. 자기 땅이 아닌 곳에 다른 차량의 주차를 방해하는 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집집마다 경쟁적으로 장애물을 설치하는 꼴불견으로 그 골목을 아예 찾지 않게 된다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을.

벌써 3년 이상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그곳에는, 주차된 차량의 대수는 거의 언제나 일정한 편이었다. 내 집 네 집 가리지 말고 누구나 편리하게 주차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놓는다면, 골목 전체가 질서와 인정이 돌고 돌아 숨통이 확 트일 것 같다.

주차단속에도 일말의 궁금증이 없지는 않다. 하루 같이 빼곡하게 줄지은 모든 차들이 단속을 받은 것인지, 하필이면 눈치 없이 단속차량이 떴을 때 주차를 했기에 그런 것인지. 그곳에서 노점을 하기 위해 종일토록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은 단속에서 제외가 되는지.

중소형 마트, 은행과 학원이 있고, 병원과 약국이 있고, 전통시장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노점상이 운집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동네. 얼어붙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점행위를 눈감아주는 것이라면 노점을 이용하는 주민에게도 약간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가까운 곳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줄을 안다. 하지만 멀리 나갔다 돌아오는 경우라면 사정은 좀 다르다. 이참에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는 차선 한 개를 공용주차장으로 합법화하는 것은 어떨지 감히 제안을 해본다. 누구나 편리하고 떳떳하게 볼 일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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