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다고 할까?
진부하다고 할까?
  • 승인 2016.04.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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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대구미술비평연구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원본과 모사본의 차이는 줄어든다. 인간의 두뇌로는 납득할 수 없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인공지능은 새로운 혁명을 준비한다. SF영화에서는 복제물이 인간과 동등하게 그려진다. 인간을 능가하는 장면들도 낯익다. 점점 가상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현실에서 목격한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바둑대결이지 않을까. 한 학생이“알파고에 가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습니까?”하여 일제히 웃기도 했지만 결코 유쾌할 순 없었다. 며칠 전 스터디 장에서도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입을 모았다. 결론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섣부른 판단일지라도 기계가 우리의 삶을 디스토피아로 내몰 것이라니 내심 불안하다. 물론 그날 한 외과의사 선생님은 긍정적인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술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1차 산업혁명 이후 화학 공업과 야금 기술이 물감의 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게 했고, 1841년엔 양철로 만든 물감튜브나 증기기관차의 등장이 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창작활동을 야외로 확장시켰다. 대량생산은 재료의 가격을 낮추었고 작품 활동도 이전 보다 편리하도록 도왔다. 종이 재료가 다양해지면서 소묘화가가 늘었고 인쇄 기술의 발전은 목판화 발전에 기여했다. 무엇보다 카메라의 등장과 광학이론은 미술사에 새로운 방점을 찍는데 일조했다. 곧 인상파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과학에 큰 관심을 보인 신인상파 화가 쇠라Georges Pierre Seurat(1859~1891년)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년)’는 광학이론이 반영된 대표적인 미술작품의 예라 하겠다. 다원화 된 현대미술의 단면만 보더라도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와해된 상태다. 미술사의 변모단계들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이렇듯 인류에게 과학기술의 영향과 혜택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총체적 관점에선 불편한 진실이 되어간다.

어릴 적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처음 생긴 날을 영 잊지 못한다. 그땐 텔레비전이 오늘날의 인공지능만큼 쇼킹한 기계매체였다. 텔레비전을 처음 보자 너무나 흥분하여 열감기를 털고 일어날 정도였다. 텔레비젼 안에 든 미지의 세계는 신비 그 이상이었다. 어린 내겐 울트라파워 초특급 기계매체였다. ‘말괄량이 삐삐’, ‘마징가 Z’, ‘은하철도 999’는 현대의 공상과학물과도 견줄 만큼 흥미로웠다. 타잔이 줄을 타던 밀림도 꼭 가보고 싶은 내 영롱한 꿈동산이었음을. 모두 어린이의 상상력을 적잖이 자극해준 주역들이다.

나른한 오후, 학생들은 의례히 식곤증에 시달린다. 그들의 졸음을 쫓을 생각으로 제안한 것은 그리기였다. 이론수업 도중에 갑자기 그림을 그리라니 모두 생뚱맞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풀리고 밝아진다. 내가 제안한 것은 5분 안에 옆 친구 얼굴 그리기다. 짧은 시간에 원본과 닮게 그리기란 능숙한 화가라도 무리일 터. 물론 능숙한 솜씨를 요구한 건 아니었다. 실은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다가 정면성과 평면성, 부동성, 완전성 등, 당시 미술에 내재된 사상에 대한 이해를 도울 요량이었다. 짧은 시간에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사진 보다 못했다. 카메라에 비해 정확도는 떨어지고 시간도 몇 배나 더 걸린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그 시간이 즐겁다. 서툰 그림을 보며 깔깔대다가 아예 대놓고 보기 좋게 고쳐달라는 주문도 한다. 서로를 주시하며 눈을 마주치고 수시 때때로 변하는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나누던 교감은 유대감과 친밀감으로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는 반응들도 재미있다. 본의 아니게 들창코나 여우 눈이 된 학생은 억울하다며 비통해 한다. 성형을 하지 않고도 동안이 된 학생, 안젤리나 졸리처럼 섹시한 입술이 된 학생은 만족감 충만하단다. 강의실은 이내 즐거움에 휩싸였다. 잠시였지만 정서를 순화시킨 시간이었다. 그림은 허구이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련의 현상들, 실수와 부족한 솜씨일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제 아무리 스마트한 기계라도 흉내 낼 수 없는 휴머니즘의 시간이 아닐까. 감정과 정서 순화 느낌의 공유 교감 등, 너무나 당연하여 등한시 한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우리 곁에 예술과 인문학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아닐까. 인간을 위해 무한 복제되고 진화하는 컴퓨터가 고맙지만 어릴 적 내 상상력을 자극하던 텔레비전, 딱 그만큼이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진부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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