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로 가는 길에
고령사회로 가는 길에
  • 승인 2016.05.02 21: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봉조
수필가
흰 머리카락에 주름진 피부와 구부정한 허리, 느린 움직임은 노년으로 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우리 주변이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가 아니더라도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보다 쉽게 느낄 수 있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던 그날은 우연히 버스의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흔들리는 글씨에 눈의 피로를 느껴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승객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빈 좌석이 없어 몇몇 승객이 서 있을 때쯤 80대로 보이는 훤칠한 키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버스에 올랐다. 월남참전용사를 연상하게 하는 복장과 별 모양으로 번쩍거리는 메달을 목에 건 늠름함이 지난 시절의 긍지와 자부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노인이 두리번거리며 지팡이를 앞세워 안으로 들어서고 있을 때 노약자석에 앉았던 여성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이라 싶었다. 그런데 양보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자리를 강제로 빼앗기는 듯 억울한 심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찬바람을 쌩 일으키며 돌아서버린 매우 거칠고 불손한 태도였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친절에도 큰 감동을 느끼는 법.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네려던 노인의 씁쓸한 표정에, 멀리서 바라보는 마음에도 안타까움의 파도가 일렁거렸다. 달려 나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심정이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여성은 버스에서 내렸다. 이왕 마음을 먹은 것, 눈이라도 마주치며 공손하게 양보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양보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흐르는 정이 주변의 분위기마저 훈훈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국민의 7%를 넘은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가 되고, 2018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로 진입을 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러한 추세로 보면 2030년경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보험업계에서는 벌써 110세 만기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삶의 질의 향상과 의술의 발달로 날이 갈수록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닐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주변의 여건이 길어지는 수명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령사회로 가는 길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구부정하고 동작이 더딘 노인의 모습이 훗날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인척의 경우라고 한다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그렇게 화가 나고 억울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어느 가수가 불렀던 가요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오랜 직장생활 끝에 나이가 들고 백수가 되어 무시를 당하지만 새로운 출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살아있다는 노년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그렇다. 양보를 받는 노인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기는 하겠지만, 구걸을 하다시피 억지로 앉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20%, 즉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 고령화 사회’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소득이 없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하는, 젊고 건강한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노인의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고령사회의 복지에 대한 정책의 비중 또한 높아져야할 것이다. 금전적인 관계를 넘어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의식 등 정서적인 문제도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교육계를 비롯하여 종교단체와 언론 등이 중심이 되어 세대 간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이 동반되기를 희망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기 마련, 노년이 행복한 사회야말로 진정 살아갈 희망이 보이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