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요양원에서
세상 끝, 요양원에서
  • 승인 2016.05.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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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수필가
오월, 그녀는 푸른 고원처럼 끝없이 펼쳐진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 끝,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그림자가 차가운 바람에 떠밀려 끊임없이 불어오고 봄이 늘 더디 오는 곳이다.

요양원으로 들어선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는 눈물부터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야야~언놈이 나를 노려보고 옷을 자꾸 벗으라한다 내 좀 살리도 제발”

그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다.

십 수 년째. 몸은 빈 배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기억마저도 퇴화되어 화석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적막했고 절해고도로 유배 온 사람처럼 어머니는 버둥거리셨다.

서른 해 전,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남자와 함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어머니는 소녀처럼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단정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머니의 음식은 지금도 가끔씩 그녀를 설레게 했다. 투박한 뚝배기 속에 낯설게 들앉아 있던 미더덕, 하나만 먹어보라는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미더덕 한 알을 입에 넣고 깨물었을 때, 툭 터져 나오던 낯선 향은 긴장했던 그녀를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다. 굳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일어선 후, 된장국 속의 미더덕을 입천장을 데여가며 모조리 건져먹었던 기억은 그녀가 예비 시어머니로부터 대접을 받아 본 처음이자 마지막 음식이었다.

운동 삼아 산에 오르시던 10년, 그리고 넘어져서 꼬리뼈에 금이 간 상태로 일어나지 못하고 누우신 20년이 어머니와 그녀의 세속 인연의 전부였다.

요양원에 들기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딸네 집을 다녀오셨다. 야외로 가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으며 하룻밤 가족들과 놀았던 것이 무척 행복했다며 다음에 또다시 가고 싶다고 했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정들 틈조차 없었다. 가까운 재래시장을 같이 가본적도 난전에 퍼질고 앉아 떡볶이며 파전으로 주전부리 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함께 목욕을 하며 등을 밀어드린 적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바다구경 한 번 제대로 시켜드린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늘 아쉽고 안타까웠다.

어머니는 오랜 병상생활로 손가락과 발가락, 무릎관절까지 다 굳어가고 있었다. 목을 뚫어 연결한 호스로 하염없이 흘러 들어가는 링거액만이 생명을 부지하는 감로수였다. 어머니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느다란 생명 줄을 부여잡고 한 줌 빛조차 들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계셨다.

어머니는 지금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을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가슴은 활화산처럼 터질 것만 같았다. 같은 여자로서 생의 절반이 늘 겨울만 같았던 어머니의 봄을 다시 찾아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만화방창 피어나는 오월, 자꾸만 시들어 가는 어머니를 위해 오늘도 만 가지 병에 효과가 있다는 만병초 화분을 들고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았다. 비록 병상이지만 그녀는 향긋한 봄의 소식을 전해드리기로 했다. 얼굴도 씻겨드리고 머리도 빗겨드리고 꽃도 한 아름 안겨드릴 것이다. 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다정히 손을 잡고 봄나들이라도 가자고 속삭여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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