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위풍당당
  • 승인 2016.05.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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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대구지방보훈청장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필자는 덤으로 생긴 하루를 붙여서 나흘간의 긴 연휴를 특별한 사정(?)에 의해 집에서만 보내게 되었는데 문득 책장에 숨은 척 꽂혀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수년 전에 서점에서 제목도 독특하고 책 표지도 그 옛날 동심 속 병아리 색깔을 하고 있어서 서평도 보지 않고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다. 제목은 ‘위풍당당’, 유머와 해학으로 유명한 소설가 성석제의 2012년도 작품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마음속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시골의 오지 마을로 숨어들 듯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건장한 조직폭력배들과 피할 수 없는 시비가 붙어 그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를 늙고 힘없는 마을사람들이 용기와 기지로 똘똘 뭉쳐 막아내고 마을의 평화를 지켜낸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단결(?)의 과정을 통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진정한 가족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고 명실상부한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이 책을 간만에 다시 들춰보면서 소설 속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로 확장해서 옮겨보게 되었다. 일종의 직업의식이랄까. 비약 내지 억지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마치 그 시골 마을 사람들이 힘겨운 현실과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폭력조직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대내외 악조건과 상황들이라고 느껴졌다.

기실 찾으려고만 한다면야 외교, 군사, 경제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 어디 한둘인가? 밖으로는 당장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우리나라를 두고 안보도박을 저지를 것만 같은 도널드 트럼프가 선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7차 당 대회를 통해 핵개발 의지를 굳힌 북한의 김정은이 불장난을 그만둘 것 같지도 않다. 골칫덩어리이기는 트럼프가 김정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또 안으로는 ‘헬(Hell) 조선’, ‘흙수저’, ‘N포세대’ 논란으로 치달으면서 청장년층이 체념과 자기비하의 끝없는 늪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향후 우리가 더불어 살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할 4대 개혁도 기득권층 내지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즐기는 일부 목소리 크고 언변 좋은 사람들에 의해 추진동력이 사실상 대폭 줄어들었는데 이것도 심히 아픈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런 엄중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골리앗 같은 거대한 세계정세의 파고 속에서 방향을 못 잡고 맥없이 추락할 것인가? 자기비하와 체념을 퍼뜨리는 내부의 적들에게 안방을 내주고 혼란의 심연으로 자진해서 걸어갈 것인가?

물론 정답은 위 둘 중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가장 바람직하고 바라기로는 안에서의 자중지란을 피하면서 세계 질서를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에.

성석제의 소설에 나오는 시골마을 힘없는 사람들도 말은 안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필사즉생의 각오를 하지 않았겠는가? 좀 고루한 말 같아도 절대빈곤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 오래인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배고팠던 시절에 대한 기억의 재생과 어느 정도 작위적인 헝그리 정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의 현실은 ‘길가다 뒤로 넘어져도 그건 무조건 누구(?) 탓이다’라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 곧이 먹힐 정도로 책임 전가의 유행이 절정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남의 탓하는 잘못된 관습이 묵묵히 스스로의 삶을 일구고 힘겹게 발을 내딛으려는 개척자들의 입지를 독초처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의 체계적인 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나라사랑교육이 절실하다고 본다.

요즘 괜히 부아가 나서 내뱉곤 하는 ‘헬 조선’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송두리째 빼앗겼거나 때로는 최극빈의 노예적 삶을 강요받았던 ‘진짜 지옥’에서 애국지사, 호국영웅, 민주열사, 산업역군들이 맨주먹으로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과정을 요즘 그 좋다는 VR(가상현실)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민이 움츠려 있는데 국가가 위풍당당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점만 명심해도 반은 성공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새 다음 달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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