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小考
자전거 小考
  • 승인 2016.05.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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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자전거 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공원이나 하천 길을 나서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깔끔히 갖춰 입고 즐기는 모습을 본다.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마니아의 자랑이 대단하다. 건강은 차치하고 혼자 즐길 수 있다는데 큰 매력이 있는 듯하다. 옆에 말동무가 없어도 되고 쾌적한 환경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몇몇 동인끼리 돈 적게 들이고 스포츠로서 주목을 받으니 효과가 큰 셈이다.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되었다. 어릴 때는 역동적으로 뭘 탄다는 자체가 그저 좋았다. 시골에서 소달구지나 찌그러진 손수레를 타며 덜컹거리는 쾌감을 즐기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집안이 좀 부유한 아이들은 자전거를 통학용으로 많이 타고 다녔다. 그게 참 부러웠다. 학교엘 걸어서 가면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자전거를 타면 이십 분이면 넉넉했기 때문이다. 학교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는 터라 혹여 준비물 하나 놓치면 되돌아가기 힘든 것은 말해 무엇 하랴. 집집이 귀한 애장품이기도 했다.

한번 씩 통학하는 친구의 자전거 뒤에 얹혀 타기도 하고 잠시 빌려서 학교 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게 고작이었다. 당시 내게 자전거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살림이 궁핍한 터라 어머님께 사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몹시도 타고 싶어 꽁꽁 언 겨울인데도 두어 시간을 걸어 친구에게 빌려와 탄 적도 있었다. 하이킹을 하는 아이들은 무리 지어 경주나 합천 등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체력이 약한 내게는 벅찬 도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친구들과 그 절반인 하양까지 타고 갔다가 집에 도착해서는 곧 바로 쓰러져 난리를 친 경험이 있다. 더위를 먹었다.

사실 자전거는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어울린다. 요즘 자전거는 날렵해서 성능도 좋지만, 그 옛날은 짐도 싣고 용도가 다양하여 호차라고도 불리었다. 장날이면 외할아버지께서는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끈에 단단히 조여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한 뒤, 논둑을 지나 십여 리 길을 다녀오시곤 했다. 귀가 때는 눈이 번뜩 띄는 정보에다 엿이며 고등어 한 손을 자전거에 묶어 그야말로 금의환향하셨다. 윗동네며 아랫동네 사람을 만나 올해 농사는 잘됐는지, 누구는 사위 며느리를 본다는 소식, 장터 국밥에 얼큰히 막걸리를 나눠 드시고 해거름 무렵, 강바람을 안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오셨다.

방학 때면 낙동강이 보이는 외가댁을 자주 갔다. 터덜대는 자전거를 타고 강둑 위를 신나게 달리곤 했다. 그 초등학교 시절, 삶이 뭔지를 알았을까마는 크게 ‘인생은 엔조이야’를 외치면서…. 들꽃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허기지면 인근 밭 수박이나 참외 한입을 베어 물기도 했고 강 언저리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뙤약볕은 텅 빈 산야를 내리쬐고 누런 소들이 풀을 뜯는데 누가 시비를 걸지도 않고 종일을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됐다. 미지근한 강물엔 피라미 떼가 줄지어 놀고 산새는 조잘대며 이리저리 플라타너스 가지를 휘감았다. 노을이 질 무렵에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결혼한 후에도 자전거 타기는 쉽게 버릴 수 없었다. 퇴근을 하면 큰아이를 앞에 태운 뒤 주변 공원이며 학교 운동장을 달렸다. 아이를 오래 껴안고 보기엔 힘이 벅찬 터라, 다행히 저도 자전거만 타면 방실 웃고 좋아해서 일거양득이었다. 한적한 곳을 달리다가 송아지만 한 개가 달려들어 혼비백산 도망가던 일이며 넘어져서 상처 난 일 등 지나고 보니 참 아련하다. 물론 중고시장에서 산 고물자전거였다.

결국, 새 자전거는 작은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사들이게 되었다. 엉덩이를 배딱거리며 열심히 타고 다녔다. 그러다 시계가 멈추듯 딱 정지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아이가 음주 차량에 사고를 당한 후였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난생처음 파출소에 가 피해자 부모로서 서로 합의를 봐야하는 등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 모두에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져 그 후로 한 십여 년 자전거라는 단어는 묻히고야 말았다.

우리 집 자전거가 복도를 차지하고 있다. 작은아이가 대학생이 돼 교통수단이 된 것이다. 나와 아내도 한 대씩 생겼다. 운동이 부족한 터에 제격이기도 하지만, 인근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다. 때로 넘어지고 펑크가 나서 고역을 치루 어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요만한 노력에 이런 기쁨이 어디 있을까 싶어 감지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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