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에
5월 ‘가정의 달’에
  • 승인 2016.05.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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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5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꼽히는 것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갖가지 꽃나무가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다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일상을 둘러싼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 중심의 기념일이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한 것 같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부모님께 무엇을 해드릴까 고심을 하고는 했는데, 이번 어버이날에는 뜻하지 않게 아주 작은 것으로 선물을 대신하게 되었다.

아흔을 맞은 아버지께서 폐에 이상이 생겨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다. 젊은 시절 설계와 시공, 감리 등 건축 관련 일을 하시다가, 중년 이후 옷장이나 싱크대 등 생활용 가구를 제작하거나 출장 수리를 하는 등 잠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그런데다 아침저녁 맨손체조를 꾸준히 해오셨기에, 허리가 꼿꼿하고 계단오르내리는 것 또한 수월하여 병원과는 아주 거리가 멀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오랜 목공일로 나무를 깎고 다듬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가 조금씩 폐로 들어가 켜켜이 쌓이게 된 것일까.

상심한 아버지가 10여 년 전 비슷한 증상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대구에 사는 둘째 딸이 보내준 도라지 즙을 먹고 나았다’는 말씀을 하신다기에, 아파트 근처 즙을 짜는 가게에 들러 배와 도라지, 생강 등을 넣고 달인 즙을 사들고 고속열차를 타고 달려갔다.

아버지는 “그래, 이거다!”하면서, 매우 반가워하셨다. 이전에도 이 즙을 먹고 나았다며, 의사의 진료보다 도라지 즙을 더 신뢰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약이 아니라 식품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야 나을 수 있겠다는 안도의 화색이 물감처럼 번져나가는 모습에 콧등이 찡했다. 다 드시고 나면 또 갖다드리겠다는 말에, 알았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기운이 없어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시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기분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병원 문을 나섰다.

엄마께 드린 선물은, 더 소박한 부추 부침개였다. 친정 근처 마트에서 가늘고 부드러운 부추 한 단을 사서, 냉장고에 남아있던 양파 반쪽을 채쳐 넣고 밀가루에 버무려 전을 부쳐드렸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아이구나, 냄새도 좋다”하시며 접시와 젓가락을 챙겨 입맛을 다셨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참을 데워 먹어도 되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 서서 전을 부치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야채즙 한 박스와 부침개 몇 장의 행복이라니. 연로하신 부모님이 꾸밈없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 오겠다며 돌아서는 발걸음도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돌아오는 길,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거리의 길모퉁이에는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줄을 지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정과 사랑, 애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카네이션을 든 행인들의 밝은 표정이 보기에도 참 좋았다.

최근 모 일간지의 설문조사 결과 65세 이상 노인이 어버이날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현금’이었다고 한다. 하긴 어느 세대인들 돈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지만 돈이 전부를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나 작은 것으로도 사랑과 감사의 뜻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가정의 달’이 있어, 지난 시간의 반성과 화해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싶다.

또한 ‘가정의 달’에는 사람들의 가슴에 연민과 은혜와 감사라는 감성의 씨앗이 뿌려져 위로와 믿음과 성장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기념일이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홀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가족과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잊고 지내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스승에 대한 추억과 감사의 마음을 반추하고, 성년이 되는 청소년에게도 따뜻한 축하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리라.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 새삼스러울 것 없는 배우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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