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작가와 벗들의 해후
천상 작가와 벗들의 해후
  • 승인 2016.06.14 21: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옥 대구미술비평연구회·미술학 박사
훈훈한 전시를 보고나면 영혼이 풍요롭다. 며칠 전 대구 아양아트센터에서 가슴 따뜻한 전시를 보고 왔다. 故손성완 작가를 추모하는 ‘오월에’전이다. 그가 삶의 경계를 넘은 후부터 스승과 벗들은 어김없이 매년 1회, 올해 10회전을 열었다. 전시는 작품을 나열하고 작품은 작가를 만나게 한다.

필자가 손성완 작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0년 전 대백프라자 전시장에서였다. 그로부터 4개월 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삼도천(三途川)을 건넜을 것이다. 심장마비라라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비통했다. 40년도 못 채운 짧은 생이었다. 안타까운 마음 한켠엔 그의 새로운 창작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미술계의 공통된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조교시절 1년 남짓 그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근면 성실했고 겸손했다. 공식 업무가 끝나면 어김없이 화실로 내달리던 부지런함은 천상 작가였다. 당시 한 아들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던 그는 학업과 작업과 학과조교를 병행했다. 집은 단출했고 곳곳엔 작품들이 즐비했다. 소박한 삶이었다. 초대받은 조교일행이 작품에 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거실에 앉았을 때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그가 꺼낸 실화가 실감난다.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든 모양이다. 온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 도둑은 당연히 얄미운 존재다. 놀란 가슴으로 가쁜 숨을 돌리는데 은근히 화가 치밀더라는 것이다. 비장한 표정으로 실토한 그 이유는 작품만 무탈했기 때문이란다. 순간 작가를 몰라본 도둑을 고마워해야할지 책망해야할지, 종종 그는 재치 있는 입담과 넉넉한 배려로 주위를 밝혔다.

단체 특강이 있던 날이었다. 특강실로 가려면 회전문을 지나야하는데 공교롭게도 손 작가만 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문의 회전 속도와 어긋난 발이 문밖으로 나올 타이밍을 놓친 거다. 구원의 손길이 닿았을 때는 이미 이마에 덩그러니 혹 하나가 생긴 후였다. 노을 진 석양처럼 붉고 큰 혹을 달고 강의실에 나타나 좌중을 폭소케 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집념은 야멸찰 만큼 진지했다. 한지와 먹의 하모니로 한국화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했던 손 작가의 작업은 시대를 한발 앞서갔다. 소재를 면밀히 검토하고 대상의 감정을 이해한 후 정신을 작품으로 체득해 간다는 ‘천상(遷想)’은 고개지(顧愷之)의 ‘천상묘득(遷想妙得)’을 차용했다고 한바 있다. 이제 그는 천상(天上)작가가 되어 화두로 삼은 ‘천상(遷想)’을 화우들과 공유한다.

2008년 5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의 첫 유작전보다 아양아트센터의 ‘오월에’전은 규모가 축소된 듯하다. 그러나 그를 아끼는 스승과 화우들이 마련한 장인만큼 규모의 대소는 잠시 접고 볼일이다. 초원의 진면목은 풀 한포기로부터 시작되듯 전시는 작품과 기획자와 평론가 그리고 관람자가 함께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큰 작품이다. 치열한 작업과 성실한 삶이었던 요절작가의 작품이 삶과 예술은 한편임을 실감케 한다. 번거로울 텐데 서로 주고받아야 할 말과 일에 때를 늦추지 않는 벗들의 노고도 본받을만하다.

운명이 해결 못하는 것을 우정이 나서서 상생을 도모한다. 작가는 가고 예술만 남았어도 이어지는 추모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과 예술을 이해하는 진정한 벗이 있어 가능할 것이다. 천상 작가 손성완과 벗들의 해후(邂逅)가 그렇다. 지쳐가는 미술계에 활력이 되는 적절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