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디스토피아
인공지능 디스토피아
  • 승인 2016.06.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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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규 경북대학교 교수
석 달 전에 있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을 계기로,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 세계 속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대국을 TV로 지켜봤지만, 사실 이들 대부분이 바둑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이를 보던 사람들이 알파고의 실력에 놀라고 이세돌의 승리에 환호했던 데는, 바둑 아닌 다른 사정이 놓여있었던 것 같다. 이를 둘러싼 더 큰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소설이나 영화에서 공상과학물(SF)은 종종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기본 구도로 설정해 왔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기계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존재가 된다. 인간과 기계는 이제 공존할 수 없게 되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놓고 기계와 대결해야 한다. 이런 위기에 맞서 우리의 주인공은 영웅적인 투쟁과 헌신으로 인류를 구한다.

물론 바둑 대국의 승패 여부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세돌에게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 대국에 SF적 상상력을 덧씌우게 된다면?

이세돌은 우리가 작동시키는 이야기 속에서 한 프로바둑 기사를 넘어 기계와 대결하는 인류의 대표자가 된다. 우리는 존재를 알 수 없는 절대 타자 앞에 선 인간의 무능을 상상적으로 경험한다. 세 번을 내리 진 이세돌이 네 번째 대국에서 묘수를 두어 알파고를 곤경에 빠트리고 승리한 장면에서,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SF의 주인공을 겹쳐 상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인간과 기계와의 대결이라는 플롯은 이제 더 이상 SF서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이런 구도로 가까운 미래를 말한다. 알파고에서 보았듯이, ‘딥러닝’이라는 기술은 기계가 학습을 통해 스스로 판단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인공지능이 진화하게 되면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마침내 기계는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류가 기계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를 기계가 결정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으로 환기되는 인류의 미래상은 디스토피아적이다. SF가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 이야기는 대체로 인류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를 몽땅 걷어내지는 못한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현재 우리가 처한 각박한 현실이 이런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강화한다.

인공지능 디스토피아는 우리 일상 곳곳에 퍼져 있다. 며칠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켜달라고 했다. 이 또래 아이들은 수시로 장래희망이 바뀌는 터라, 또 그 나이의 남자 아이에게 운동선수가 로망인 것은 별스러운 일도 아닌지라, 진지하게 받아들일 일도 아니어서, 너의 운동능력이 야구선수가 될 정도가 아니니 단념하라는 투로 가볍게 말했더니, 아이가 전에 없이 울상을 지으면서, 그럼 자기는 앞으로 뭘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을 한다. 뜻하지 않은 아이의 반응에 그래도 네가 잘 하는 게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가 어른이 되면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다 빼앗아가서 할 일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또 한 번 예상치하지 않은 말을 한다. 어디서 들은 말이 있었을 테지만, 이런 아이의 말에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낙관적인 말을 할 수 없는 데서, 두려움과 혼란 등이 뒤섞인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미 와 있는, 이런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낯선 세계이다. 지금의 삶이 낯선 미래로 인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우리는 혼란스럽다. 대략 100년 전 인류가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념에 근거하여 미래를 낙관해 온 것과 지금의 불안을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과학에 대한 낙관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지만, 실제 인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현재 우리를 뒤덮고 있는 불안에 대한 위로가 될까? 사족일지 모르나, 미래 세계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되, 언제 닥칠지 모르는 디스토피아를 앞질러 살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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