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행 속도는
나의 보행 속도는
  • 승인 2016.06.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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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국회에서 청문회법 제정 문제로 공방이 오갔다. 여당에선 사사건건 청문회를 열면 일 년 내내 나라가 시끄럽고 시간만 낭비할 것이라고 하자, 야당에선 당연한 국회 권한이며 국민의 알 권리라며 무슨 소리냐고 되받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 잠재워졌지만, 일부에서는 우리 국회 수준이 이럴진대 견제가 아니고 통제만 만연하여 행정 공백이 생긴다고 우려를 한다. 하지만, 반론도 그럴듯하다. 그러면 행정부의 수준은 어떤가, 과연 선진국의 대열에 낄 만큼 능력이 갖추어졌단 말인가. 내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풍조가 곳곳에 있다.

수준, 지금 내 수준은 어떨까. 모든 걸 자신의 척도대로 판단하여 다른 사람이 앞장서 해나가는 것은 껄끄럽고 뭔가 제동을 걸고 싶어진다. 당연히 내 상식으로는 이러이러하여 옳은데 주위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여 문제가 파생된다고 본다. 저 사람의 편파성과 그릇됨 때문에 일이 꼬이고 내 인생까지 망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나의 직장 상사가 그랬고 아내가 그렇고 친구들이 그러하였다. 일부 친구는 아직도 모임에 나오지 않고 나름대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모두 자신의 보행 속도를 이탈한 탓이다.

저것만 제어되면 다 해결될 것 같은 착각, 그래서 최근 ‘묻지 마’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연유 없이 당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자기의 각도에서 판단한 결과이다. 자고 일어나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사고들 머리를 맞대어 보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인식한다. 논리적으로는 그래서는 안 되고 근본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구동성 해도 그때뿐이다. 음란을 생각하는 것만도 범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부를 관리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고 사회구조이다.

다 알 듯이 우리나라는 스포츠와 경제, 국방력이 세계 십 위권을 오르내리는 명실 공히 잘사는 나라에 속한다. 국민의 학구열이며 머리와 손재주가 우수하여 각종 대회에 나가 명예를 떨치지만 행복체감지수가 낮다고 한다. 아무리 국민총생산과 수출 증가율이 높다 해도 근본적인 노사 갈등은 해결의 기미가 없고 서로 믿음이 부족한 터라 여러 측면에서 뒤떨어진다고 보는 이유다. 우린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참사를 보아왔지 않은가. 교량, 선박, 철도 등 어처구니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 그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인가.

구태여 큰 것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 가보면 자주 실망한다. 멀쩡하던 화장실 문이 얼마안 가 덜컹거리고 벽엔 담뱃불로 지진 흔적이 비일비재하며 휴지는 늘 바닥에 너저분하다. 공원주변에 흩어진 쓰레기는 그렇다고 쳐도 주요 도로변에 대형폐기물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기 집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으로 오랫동안 잘 쓰고는 헌신짝 버리듯 그리 할 수 있는지, 인정이 쌀쌀맞아 메마르기 이를 데 없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잘하면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 쉽게 고쳐지지 않을 일인 줄 알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는 가운데도 마음이 다사로워지는 게 있다. 요즘 자원봉사자가 많은 주목을 받아 크게 위안이 된다. 나만 가지고 있을 게 아니라 내어놓고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독식하지 않고 남에게 베푼다는 것이 그 얼마나 눈물겨운가. 사회적 공감대와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니 더불어 살맛도 난다. 나 스스로 좋아서 기부한다는 것, 우린 천사라고 부른다. 일벌의 부지런한 수정으로 우리는 맛 난 꿀이며 과일을 먹을 수 있고 아름다운 꽃과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는 일인지라 얼마나 복된 일인가.

세상의 높은 벽 그리고 빠른 정보를 따라가자니 ‘핑핑’ 돈다. 툭툭 불거져 나오는 예기치 못한 일들, 어이없게 당하고 보면 말문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회 지도층이라도 좀 앞서 모범을 보인다면 믿고 따라갈 텐데, 그들이 더 휘청대고 있으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끝없는 혼전과 혼선 그 종점이 어디일까. 주변 여건이 가만 놔두지를 않으니 말이다. 빨리 성취하고 갈아치우고 잊어버리는 게 몸에 밴 탓이다.

인간의 삶은 보행 속도에 맞추어 걷는 것이 가장 안정되고 알맞다고 하지 않던가. 그 이상은 오히려 몸을 시달리게 해서 역효과라고 한다. 하마 한여름이 온 것 같아 기운이 빠진다. 더위를 탓하기 전에 미리 체력부터 단단히 점검하자. 나의 보폭, 그 한계점을 알면 호흡도 훨씬 가뿐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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