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를 배우며
오카리나를 배우며
  • 승인 2016.06.2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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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친구들이 배낭을 챙겨 야외로 나들이를 떠난 일요일 오후.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가방에서 잠자고 있던 오카리나를 꺼내 불어본다. 오카리나(ocarina)는 흙으로 빚어 만든 도자기 피리의 한 종류로 청아한 소리가 매우 듣기 좋아 배워보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두 손으로 감싸기에 부담 없는 크기와 가벼운 무게가 배우고 싶은 욕망에 부채질을 한 것도 사실이다.

얄팍한 책이나 화장품을 챙기듯 가방에 넣어 다니며 아무 곳에서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아직은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잠기거나 갈라진 목소리처럼 탁하고 찢어지는 음이 부자연스럽다. 운지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박자가 제멋대로 늘어지고 막히기를 반복한다. 특히 뒷부분의 엄지손가락이 담당해야 하는 음을 만나면 더욱 어려움에 진땀이 날 지경이다.

콧노래 흥얼거리거나 따라 부르기에 좋은 노래도 막상 연주를 위해 악보를 들여다보면, 어느 곡 하나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자연스러운 소리를 위해서는 악보를 읽는 눈과 음을 짚는 손가락과 박자의 길이에 알맞은 호흡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 밖에도 높은 음과 낮은 음, 도돌이표, 제자리표, 늘임표 등 한 눈에 보아야 할 것들이 의외로 많다.

학창시절, 종교 활동을 하면서 곁눈질로 아는 곡만 악보를 달달 외워 반주자 대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실수라도 할까봐 가슴은 콩콩 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즐겨 부르던 동요를 하모니카로 불어보기도 했고, 혼자서 기타의 코드를 익히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우지를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맛만 보고 지나온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던가. 어느덧 예순이 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니 가슴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던 순한 바람이 살랑살랑 회오리를 치다가 점점 크고 묵직한 태풍으로 몰아쳤다. 요모조모 따져보다가 음역대가 넓지 않아 적응하기가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오카리나를 선택한 것이다. 기본도 모른 채 도레미파를 짚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한 악기에서 연습을 한 만큼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 연습이 중요하다. 글을 쓰는 것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단 없는 습작이 쌓여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처럼, 운동이나 악기연주도 꾸준한 연습이 없이는 제자리걸음이나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쉼표가 있는 자리에서 적당히 쉴 수 있는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쉬어야할 때 쉬지 못하면, 호흡이 따라가지 못해 다음 박자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네 인생도 하나의 악보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주변 환경과의 균형을 맞춰야할 때가 있고, 빨리 가거나 더디게 가야할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 되돌아가거나 적당한 숨고르기도 필요하다.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다가 쉬어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신체에 크게 무리가 따르게 된다. 아차! 하는 순간에 어지러움으로 발을 헛디디거나 혈압이 높아지거나 혈관이 막히고 심장이 멈추는 등 여러 가지 양태로 피로가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찾아온 피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건강은 자신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병으로 시련을 겪게 되기도 한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삶이 얼마나 윤택할까’ 싶은 막연한 바람을 가져본다. 아니, 썩 윤택하지는 못하다하더라도 기쁜 일은 배가 되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월요일 오카리나를 배우러 문화센터로 간다. 더불어 한 주의 시작을 음악과 함께 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기대하는 만큼의 유연한 소리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을 해보자. 그리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서두르지 말고 한 계단 한 계단 찬찬히 올라보자. 음표에 따라 발장단 맞추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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