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만나다
고요를 만나다
  • 승인 2016.07.06 16: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주
자연요리연구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분초를 다투며 서로의 일상을 확인하고 반응하는 시대에 잠깐의 불통은 불안과 무성한 의구심을 생산한다. 별 소식이 없다는 것은 곧 무탈하다는 뜻인데 현대인은 그 잠깐의 단절을 견디지 못하고 궁금증을 폭발시킨다. 즉각 혹은 실시간이 답인 세상에 한 사흘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을 그 누구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라 곧 불안이라는 공식과 맞닿아 있어 수시로 연락을 쏟아 놓으며 상대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 잠깐의 기다림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인은 은연중에 빠른 것은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불편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겨를과 틈 없이 제공되는 무한의 정보를 우리는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소비하며 하루를 바쁘게 산다. 눈만 뜨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정보로부터 빠져나갈 도리 없이 시간을 소진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실시간 소통기구인 핸드폰이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 물건인지 삶을 묶는 족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오래된 핸드폰이 전원만 켜면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며칠 전 깜깜 절벽이 되어 버렸다. 시름시름 앓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오래 쓴 물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보니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다 불현듯 절명을 맞고 말았다. 무수한 지인의 연락처와 귀한 정보가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날아갈 처지라 발 빠르게 서비스센터로 달려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허무했다. 전원이 켜지지 않으니 그 무엇도 복구할 수 없고 꼭 저장된 정보를 챙기려면 사설 업체로 가보라며 연락처를 준다.

왠지 서비스센터와 공생관계인 것 같은 사설 업체는 고액의 수리비를 요구하며 복구의 정확성은 장담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어쩌지’ 하는 마음과 묵은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여 잠시 망설이다 고장 난 핸드폰은 포기하고 새로운 핸드폰을 신청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꼭 해야 할 일을 놓친 듯 허전하고 손에 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한동안 서성인다. 현대인은 6분 30초마다 휴대폰을 한 번씩 들여다본다는데 그 반복된 행위가 사라진 빈자리를 감당하기 어렵다. 혹 다급한 연락이라도 오면 어쩌지 불안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하루가 궁금하기도 하더니 오후쯤 되니 불안은 사라지고 견딜만해 졌다. 오히려 디지털기기를 쳐다볼 때 느껴지던 멀미 감이 사라지니 눈도 맑아지고 상쾌하다.

휴대폰에 할애하던 시간이 다른 형태로 온전히 나에게 주어지니 우선 빗소리, 수다스러운 새소리, 나뭇잎이 쉬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늘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어쩌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핸드폰 때문에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락두절 상황이 궁금해 집에 찾아온 친구와 차를 마실 때도 상대의 안색을 살피게 되고 평소와 달리 자주 하늘도 바라보게 된다. 친구와 무심히 주고받던 이야기 속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조화속인지 전에 없던 일이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마음에 체온이 제법 실렸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간 익명의 대상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하루를 분주히 살았지만 휴대폰 없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민얼굴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알람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머물 인연은 머물고 사라질 인연은 저절로 멀어져간다. 거둘 것과 버릴 것이 선명해지니 그간의 시간도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어떻게 맨날 열어 놓고만 살겠는가. 가끔은 자신을 닫아걸고 내 안에 무엇이 자라는지 둘러봐야 한다. 자발적 고립의 장점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고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흔들림 없는 고요 속에 몸을 담그면 무의식이 환하게 밝아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참맛을 황홀하게 경험한다.

연락 올 곳도 내가 연락할 처지도 못되니 고요 한 자락 끌어당겨 마루에 누워본다.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 덩굴손 사이를 쳐다보니 거미 한 마리 실을 뽑으며 허공을 지나간다.

지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집을 짓고 길을 내더니 그 길 위에서 자유롭다. 물처럼 편안한 이 느낌은 몸과 마음이 고요에 닿았다는 증거인데 아직은 생광스레 만난 이 고요를 깨트리고 싶지 않다. 새로운 핸드폰이 도착하면 또 거미처럼 길을 내고 집을 짓겠지만. 그때 까지 고요와 뒹굴뒹굴 오래 놀고 싶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