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진료대기
어느 진료대기
  • 승인 2016.07.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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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우린 대부분 어떤 결과일지도 모른 채 기다리고 그 처분에 따르며 산다. 기다린다는 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가 타고 대기는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므로 사후에 뚜렷한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때로 기다림은 막연하거나 상대가 없어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대기는 결연하며 한정적이어서 이내 행동을 수반한다. 그 속에는 늘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게 촛농처럼 끈적댄다.

요즘 부쩍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간다면 으레 대기 번호표를 뽑아 들고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참으로 진중하다. 한편으론 잠시나마 나를 되돌아보고 집중할 기회이기도 하다. 신병에 대해 진단을 내리게 되는 그 엄숙함이란 마치 재판관이 판결하는 것과도 같다. 질 좋은 삶 아니면 더 내리막으로 빠지느냐의 갈림길에 들게 된다. 날로 약해져 가는 건강, 담당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하면서 대부분은 눈을 감거나 티브이를 본다. 갔다 하면 거의 한나절이 소진된다. 그래 나이가 들면 병원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어제는 내과, 오늘은 이비인후과, 또 내일은 다른 과를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병원엘 가면 생각보다 아픈 사람이 많다. 환자를 성심껏 진료하는 의료진을 대할 때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자기도 언젠가는 아파서 저런 모습이 될 것이거늘, 이곳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듯 존경스럽다.

서성대는 사람의 수를 보아서는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빈자리도 없다. 누가 진료실에 호출되어 들어가면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모습부터가 경쟁이다. 아픈 것도 고통인 것을 그런데 까지 신경을 써야 하다니 문득 서럽다. 영상만 나오는 티브이는 누가 보든 안보든 아예 상관없는 듯 혼자 돌아가고 환자와 보호자는 앞으로 닥칠 일에 무거운 표정이다. 어서 담당 의사를 만나 긍정적인 답변에 완치를 바랄 뿐이다.

석 달 전 나는, 왼 손가락을 다쳐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오늘은 그 진료 목적으로 왔다. 바짝 긴장해서 수술대에 누웠던 기억이 새롭다. 일순 난 어린아이에다 벌거숭이가 되고 말았다. 내 목숨은 오직 의사의 손에 달린 것, 제발 아무 탈 없이 잘 마쳐 달라고 얼마나 기원했던가. 두 눈을 가릴 땐 정말 두려웠다. 침대가 수술대로 끌려가고 간호사에 둘러싸여 뭔가 분주한 모습이 불빛 속 어렴풋이 잡혔다. 간혹 수술 도구 부딪치는 소리, 사무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여태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마취가 풀리기까지의 과정, 그보다 중한 시간은 없어 보였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시간과의 싸움, 인내를 감수해야 했다. 십 개월을 어머님 뱃속에 대기 하다 분만실에 가서도 얼마나 힘들게 나왔던가. 살면서도 많은 시간과의 치열한 협상과 다툼을 하여왔다. 실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하여 대기하는 시간은 몇 배나 된다. 그게 성공을 하면 좋건만 대부분은 만족도가 낮다. 죽어 화장장에 가서도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시간을 잘 활용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하지 않은가. 본의 아니게 시간과의 치열한 정쟁은 피할 수가 없다. 우린 그 속에서 다시 담을 쌓고 집을 짓고 또 허물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벌써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지겨움이 노여움으로 변하려고 한다. 곧 이름을 부를까 싶어 화장실도 가질 못한다. 급기야 옆에 보호자들도 웅성대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간호사에게 자기 순서가 어떻게 되었는지 신경질적으로 확인하고는 돌아온다. 왜 이리 늦는지, 스크린에 표시라도 있으면 덜 답답하겠는데 도대체 환자를 위한 배려도 없다면서 역정이 들끓는다.

어떤 이는 누구와 만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을 더 좋다고 한다. 역설일까. 막상 만나면 얼마 가지 않아 만나기 전과 똑 같아지고 결국 헤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아픔이 싫어진단다. 기다리는 것은 삶의 윤회이자 질서인 것 그 끈질김 속에 보람과 희망도 찾으리라.

간호사는 두 시간쯤 지나 호명했다. “손가락이 자꾸 붓고 아픕니다” 나는 고통스럽게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러니까 자꾸 움직이세요. 물리치료를 좀 받아보세요” 담당 의사가 아픈 곳을 꽉 눌러 보고 내린 처방은 삼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오랜 대기의 고통과 지겨움을 모르는 걸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래도 다행이구나!’라며 위안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시간과 나의 질긴 싸움 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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