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눈뜨는 아침
혼자 눈뜨는 아침
  • 승인 2016.07.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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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수필가
주위가 온통 적막속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속도로 위에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친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기척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고해의 바다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가 보인다.

악몽이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젖어 있다. 등줄기로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 창을 후려치는 빗소리 때문에 미로 속을 헤매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자 눈뜨는 아침이다.

이십여 년이 넘는 결혼생활의 반 이상을 주말부부로 살고 있었다. 아들은 군에 가 있고 딸아이가 세상일에 쫓겨 바깥 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홀로 아침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온 방안을 차지한 익숙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TV를 켜면 지난날 아버지가 앞서간 길을 내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고독과 비애가 해묵은 슬픔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임종 전 마지막으로 내게 각인된 아버지는 TV에만 눈을 꽂은 채, 침대 위에 길게 누운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그 어떤 소통도 거부한 채 죽을 날만 받아놓은 사람처럼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계셨다. 그땐 아버지가 죽음과 싸우고 있는 외로움을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라는 허울뿐이었다. 친정에 가서도 그저 내가 왔다는 목소리만 들려준 채, 방문 한 번 열어 보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어쩌면 그토록 나를 사랑했던 아버지를 외로움의 고통 속으로 떠밀어 넣은 건 내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힘겨웠던 삶에 대하여 조금의 연민도 담을 여지조차 남겨두지 못했다. 오직 TV에게 아버지를 내맡겼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넘기면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가족이 늘 함께 있는 사람도,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떨어져 살아야하는 사람도,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외롭고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의 외로움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고독사’한 노인의 시신이 몇 개월 지나 발견됐다는 뉴스가 뜬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용어요 현상이었지만 이젠 쉽게 듣는 말이 되었다. ‘고독사’를 검색하니 단어 아래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컴퓨터조차도 생소하고 낯선 단어다.

요즘 들어 임종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손잡아 주는 이 하나 없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남기는 말도 들어줄 사람도 없이 사라지는 삶이고 보니 망자의 유품을 대신 정리해 주는 업체도 조금씩 늘어난다고 한다. 고독사 때문에 망자가 머물던 자리를 치울 사람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뒤늦게 가족에게 주검이 발견되면 ‘아무도 모르게 해 달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한다고 들었다. 자주 왕래가 없던 유족은 물론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려는 집주인의 발 빠른 처신 때문이다. 고인이 머물던 방의 보증금으로 장례를 치러야하는 가난한 유족의 상처보다, 누구 한 사람 마지막 임종을 지켜 주지 않는 가운데 생을 마치는 쓸쓸한 삶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 어느 누구도 홀로 태어난 이는 없다. 혈육의 축하와 축복 속에 태어나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유배지의 섬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살아가는 삶도 있다. 가족과 이웃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사회는 고독사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독은 생명에 이르는 병이요 사망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던 키에르케고르의 글귀가 새삼 떠올랐다. 아버지가 앞서 걸어가신 길을 또 내가 걸어가야 하듯 내가 걸어온 길에서 깨달았던 아픔을 자식에게 남겨 주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침이 되니 밤새 그리워했던 딸아이의 구둣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딸아이의 눈빛이 조금 슬퍼보였다. 딸아이도 뭔가 속상하고 슬픈 일을 만났을 거란 생각이 들자, 들릴 듯 말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딸아이를 불러 세웠다. 순간 딸아이의 흐린 눈과 나의 물기어린 눈이 마주쳤다. 조심스레 다가가 딸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린 가족이잖니.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함께 견디고 함께 이겨내자” 딸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툭, 내 가슴 속으로 떨어졌다. 내 눈물도 아버지의 품으로 툭, 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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