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성(相互性)과 사회적 경제
상호성(相互性)과 사회적 경제
  • 승인 2016.08.0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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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부산대 경제통상연구원 연구교수
지방분권운동대경본부 공동대표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영화 ‘부산행’을 가족과 함께 관람했다. 좀비 액션물이라는 장르가 주는 색다른 재미도 있었지만 이기적인 인간과 협력하는 인간의 비교, 그리고 전자에서 후자로 변해가는 과정 등의 실감나는 묘사가 전해주는 공감의 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죽음 앞의 극단적 공포상황에선 모르겠지만 보통의 경우 우리는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도 항상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이기적일 때 나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상대가 협력할 것이라고 믿게 되면 나도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협력을 선택하게 된다. 매사에 자신의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인간’이나 항상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인간’ 이 아닌 이런 ‘상호적(相互的) 인간’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상호성’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게임이론의 ‘최후통첩게임’이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A에게 1만원이 공짜로 생겼는데, 곁에 있는 사람(B)과 그 돈을 나눠가지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를 줄까? 이 때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거절할 수도 있다. B가 받아들이면 두 사람은 A의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지만,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한다.

‘이기적 인간’ 만을 가정하는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A는 제로에 가까운 최소금액을 제안하고 B는 단돈 100원이라도 수락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전 세계의 수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들이 이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한 결과를 종합해보면, A는 대개 4,000~5,000원 정도 금액을 제시하고, 이 경우 상대도 수용하는 것으로 나왔다. 거절당하면 자신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A는 자신의 몫을 조금 포기하고 상호이익을 위한 ‘윈윈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2,000원 이하를 제시한 경우 B는 거절하고 돈을 안 받는 쪽을 선택했다. A의 이기적 행동에 대한 보복의 의미다.

인간의 본성인 ‘상호성’ 을 인정하고 협력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인간의 가치를 우위에 두며 자율성, 협력, 민주적 의사결정 등을 중시하는 경제활동이다. 시장경제와 대립되기 보다 보완하는 개념, 즉 시장경제가 만드는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건강한 공동체 형성과 유지를 위한 사회적 가치에 눈을 돌린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이 단어가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의 불을 본격적으로 지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부가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하고 지원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경우 20대 국회 출범 후 아직 발의되지 않고 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부정하고 국가의 기본원리를 자유와 창의에서 협동과 연대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 인지 모르겠다.

협력과 연대가 자유와 창의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창의를 생명으로 하는 학문적 영역은 물론이고, 사적 집단의 의사결정이나 정책집행과 같은 공적영역에서도 협력, 협업(協業), 협치(協治)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협동과 협력이 잘 이뤄지는 곳에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실험이 활발하며, 이것이 문제해결력을 높인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에서 정작 우려되는 것은 중앙정부가 민간의 사회적경제 활동을 관리감독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경우이다. 사회적경제 관련 개별법들을 포괄하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이 나오되, 그 법안은 반드시 지역 및 지역사회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참여와 주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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