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24시
종합병원 24시
  • 승인 2016.08.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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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살면서 가장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곳이 병원이 아닌가 한다. 종합병원 응급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달포 전, 본의 아니게 응급실을 찾게 된 일이 있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던 것이다. 주말의 이른 아침, 상황이 위중한데다 환자가 몸을 가누지 못해 구급차 신세를 져야만했다.

처음 경험한 종합병원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뇌출혈 등으로 촌각을 다투는 환자,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공포에 떨고 있는 70대 노인, 입으로 거무튀튀한 즙 같은 것을 쏟아내며 연신 비명을 질러대는 할머니, 인사불성으로 들 것에 실려 온 환자,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스스로 걸어 들어온 젊은이. 물 밀 듯 밀려드는 환자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고가는 구급대원과 병원 관계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어디론가 긴급하게 연락을 취하는 보호자들의 당황한 눈빛.

놀랍게도 그런 환경 속에서도 차례를 지켜가며 검사와 처치와 투약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질서 속의 질서가 매우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환자의 기초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문진을 하는 사람, 체온과 혈압을 재는 사람, 심전도 검사를 하고, 혈액을 채취하며, 검사결과에 따른 중간 과정을 설명하고 다음 단계를 안내하는 의사. 역할과 임무에 따라 입고 있는 옷의 모양과 색깔은 제각각 달랐지만, 목적은 하나였음에 잔잔한 파도처럼 역동성이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약간의 소홀함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잇기 위한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불만을 표출하기는 무리였다.

응급실에서 어느 정도 검사와 처치를 마치고 해당 분야의 병실이 정해지면, 그나마 안정을 취하며 조용하게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일반 병실에서는 환자보다 보호자들의 마음이 맞아야 생활이 편하다는 것을 눈치로 알아챘다. 창가 쪽 환자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에게는 오로지 병상에 누운 아들만이 전부였다. 아들이 열이 많아 더위를 탄다며 실내온도를 24도로 설정해놓고, 다른 사람들은 손도 대지 못하도록 먼저 들어온 텃세를 톡톡히 부리고 있었다. 입구 쪽의 나는 한기를 느껴 온도를 높이고, 그 여성은 다시 온도를 낮추는 사이 짧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산소 줄을 매단 채 눈의 초점을 잃고 말 한마디 못하시던 옆방의 할머니가 목숨을 다하자 가족친지들이 달려와 이별의 아쉬움을 눈물로 고하고, 밤새 신음과 잠꼬대로 주변을 어수선하게 하셨던 할아버지가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사이 보호자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직업적인 간병인을 제외하고, 보호자로서 간병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면부족과 운동부족으로 몸이 정상이 아님을 호소했다. 고관절 골절로 병원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있다는 맞은편 할아버지를 돌보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런 중에도 아침마다 ‘잘 주무셨느냐’는 인사를 건네며 혈압과 체온, 혈당 등을 체크하는 젊은 간호사들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발견한 한 줄기 샘물 같은 위로가 되었다.

복도의 중간쯤, 텔레비전이 설치된 데이룸(day room)에서는 한 무리의 방문객들이 웃음보따리를 펼쳐 다른 사람들의 TV 시청을 방해했다. 처음에는 검지를 입술에 붙여가며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차츰 수위가 높아져 따가운 눈총과 손가락 세례를 받을 때까지 제 세상을 만난 듯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종합병원 24시. 거듭 생각을 해봐도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할 곳이 병원인 것 같다. 하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또는 예방 차원에서 적당한 시기에 반드시 찾아야하는 곳 또한 병원이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결코 멀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병원이 아닌가 한다.

한 달 이상 간병생활을 경험한 보호자로서 희망사항을 말할 수 있다면,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이 몸을 활짝 펴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루 한두 차례 보호자들을 위한 요가 강습 또는 복도의 한 편에 간단한 운동기구라도 설치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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