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개념
미술과 개념
  • 승인 2016.08.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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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주
미술평론가
현대 미술을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용어의 문제이다. 미술을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로 적고 있는 사전적 의미가 낯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정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미술관에 가면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담기 어려운 작품을 보게 된다. 게시판을 옮겨놓은 것도 아닐 터인데 숫자와 도표가 적혀 있기도 하고 텅 빈 공간에서 아름다운 대상물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 보려 해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당혹감과 함께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미美는 ‘크고 살찐 양’, 즉 대大자와 양羊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를 따라가다 보면 중국 고대에서 아름다움은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또 한편에서는 유용성보다 감각, 특히 시각적 쾌감을 만족시키는 조화와 비례로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에도 아름다운 것과 예술을 연결하여 일반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이다. 프랑스의 바뙤가 ‘미에 대한 추구’라는 원리로 귀결되는 회화, 조각, 음악, 시, 무용 등을 ‘아름다운 기예’로 제시함으로써 예술과 미가 결합되고 미의 원리에 충실한 순수미술처럼 예술은 각기 독자적인 영역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의 예술은 더 이상 장르의 순수성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 장르가 한 작품 안에서 교차되거나 기존의 장르에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키며 다원예술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만든 미술이란 용어로는 우리가 마주치는 예술 현상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미술’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언어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존의 형식이나 언어를 넘어서려 한다. 반면 우리의 생각은 언어에 매여 있다. 이 어긋남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있다. 말에 갇혀 있는 동안은 그 긴장 속에서 빚어지는 예술의 진면목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구에서 1966~72년에 절정을 경험한 개념미술은 67년에 그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였다. 개념미술은 미를 추구하는 것도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형태나 재료가 주는 아름다움, 또는 새로움의 충격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한 것이다. 즉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미술이다.

개념이 된 미술은 더 이상 물리적인 유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미술이라는 말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어긋나게 된다. 말과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거짓으로 인식한다. 아름다움을 표현한 대상으로서의 작품을 기대할 때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나 현실의 작품세계는 그러한 정의를 넘어선다.

시각 예술, 조형 예술 등 다른 용어를 찾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은 하나의 공통된 성질을 지닌 것이 아니라 가족 유사성의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개념은 어떤 개념이 단일한 특성으로 공유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성질을 의미한다. 즉 축구, 양궁, 탁구 등이 각기 서로 달라 일치하는 점이 없어 보여도 가족 구성원이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것처럼 게임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유사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술의 다양한 모색이 미술의 이름으로 용인 될 수 있다.

개념미술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대상이 아니다. 대상에 담긴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이나 대상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사고나 의식을 형상화 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전통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는다. 일상적인 오브제, 사진, 지도, 비디오, 차트, 그리고 특히 언어 그 자체를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개념미술이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관람자의 적극적인 반응이다. 개념적인 미술작품은 정신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관람자에게 존재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미술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레디메이드’의 형식이다. 레디메이드란 미술 밖의 세계에서 가져온 사물이 미술로 주장되거나 제시되는 것을 말한다. 뒤샹이 제시한 소변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미술 작품의 독창성과 미술가의 손작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개입’이다. 미술관이나 길거리 등의 예기치 않은 문맥 속에 이미지, 텍스트, 사물 등을 갖다 놓음으로서 새로운 문맥으로 관심을 끌어낸다. 셋째는 ‘자료형식’이다. 증거와 기록, 지도, 차트, 사진을 제기함으로써 실제 작품과 개념 행동 등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개념과 진술 조사 등이 언어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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