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신화와 음모론을 넘어서
사드, 신화와 음모론을 넘어서
  • 승인 2016.08.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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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규
경북대학교 교수
올 여름, 사드 문제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뜨겁다. 사드에 대한 찬반 표명은 일단 미뤄두자. 사드의 실효성 문제도 군사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이야기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는 ‘사드 신화’라고 할 만한 이야기이다. 신화란 원래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우주 혹은 종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현대의 이야기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 ‘성공신화’, ‘창업신화’, 또는 ‘잘못된 신화’ 등에서 보듯, ‘신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놀라운 이야기, 그러나 그 진실 여부가 문제시되는 이야기이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하려고 하니 남한은 사드를 배치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는 ‘냉전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냉전 신화가 근거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 특히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틀이 앞서게 되면 북핵의 위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사드가 이를 막아내는 적절한 무기인지, 북핵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없는지 등 실사구시적인 물음을 던지지 못하게 된다.

사드 배치가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니 해당 지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바탕에 ‘국가 신화’가 놓여 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을까? 국가 신화를 받아들이게 되면 이를 따져 묻기 어렵다. 우리는 강대국이 주인공이 된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열강들이 식민지 사냥에 몰두할 무렵 한말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강대국들의 손에 의해 한반도에 분단 경계선이 그어지던 해방 전후의 역사 등이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국가들이 주인공이 되던 시대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음모론’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음모론이란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배후에 거대 권력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유포되는 이야기이다. 임기 말의 정부가 지지율을 까먹어 가면서까지 사드를 배치하고자 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 뭔가 이면 거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던진다면, 그리고 그 가능성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사드 음모론’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음모론을 무조건 비합리적이라고 단죄해서는 안 된다. 음모론 중에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하는 것도 많다. 실제로 지난 이명박 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는 동안 선거에 권력 기관이 개입하는 등,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합리적 의심에 적절히 답해야 한다.

음모론과 때로는 겹치는 것으로 ‘괴담’이 있다. 가령 ‘사드 참외’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어떤 이들은 사드가 배치되면 전자파 때문에 참외 농사가 망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 측에서는 이런 유의 이야기를 ‘괴담’으로 규정하고 이를 엄금하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근거 없는 괴담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를 다루는 정부의 태도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설령 괴담이라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엄금할 일은 아니다. 괴담은 그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공포와 불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정부는 ‘사드 참외’라는 말 이면에 놓인 공포와 불안을 읽어내는 데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신화나 음모론을 넘어서, ‘지금 여기’, ‘우리’의 진실을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는 불행에 맞설 수 있다. 어떻게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고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의 평화와 공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도 더 낮은 자세로 이야기에 귀를 열고 함께 진실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책임 있게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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