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쓴 책
빌린 책, 산 책, 쓴 책
  • 승인 2016.08.31 09: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사
사람들마다 삶의 패턴이 다르다. 가치관, 취향도 다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꽂히면 거기 들이는 비용도 아깝지 않다. 비싼 비용을 들인 만큼 더 애착이 간다.

그뿐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인 만큼 남도 나처럼 좋아하리라 싶다. 만약 애주가라면 비싼 양주를 사주며 “술맛 어때, 좋지. 좋지?” 하며 술 못 먹는 상대방도 나처럼 즐겨주기를 은근히 조르며 지켜보게 된다.

내가 아는 여자는 책에 꽂혔다. 출근할 때나 여행 갈 때도 읽을 책을 제일 먼저 챙긴다. 그녀가 일용할 양식이다. 일용 양식을 챙기는 버릇 또한 재미있다. 발린 책을 읽다가 내용이 좋으면 새 책을 산다. 산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음미하고 싶어서. 요즈음은 《그림 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같은 책을 사서 밑줄을 긋는다. 《미뢰》같은 수필집은 사서 나눠준다. 정선된 문장이 좋아서다. 그런 책을 사서 선물하고는 언제쯤 책 읽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까하고 기다린다.

그런 그녀가 요즈음 책 두 권을 썼다. 《섬김밥상 행복교육》교육수필집과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서간문학서다. 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에서 보면 ‘진짜 좋은 책에는 인간이 살았으면 싶은 이상 세계에 대한 설계도가 내장돼 있다’고 한다. 그렇듯, 그녀가 쓴 《섬김밥상 행복교육》책에는 섬김밥상으로 행복교육을 열어가는 방법론이 내장돼 있다.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 》책을 써 세상에 내보이는 이유는 《삼성을 생각 한다 》를 쓴 김용철의 서문과 맥을 같이 한다. ‘나는 삼성 재벌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교직에 몸담은 그녀에게는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는 아이들이 그것이 전부인양 받아들이고 흉내 내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니다. 그건 일부에 자나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다. 아직도, 대부분 교실에서는 사제간에 존중과 신뢰를 쌓으며 인성과 정을 키워가고 있다는 희망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체르노빌의 아이들 》에서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유는 원자력 공학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는 히로세 다카시의 마음처럼, 그녀는 피폐해가는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인세로 받은 돈으로 다시 책을 샀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학교 4,5,6학년 전교생에게 다 나눠주기 위해, 그리고 방학 중에 서부도서관 자유학기제 인문학강사로 가면서 중학교 1학년 동아리 학생들에게 <인문학 속으로 들어온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강의할 때 교재로 가져가 선물하려고 700권을 샀다.

책을 읽은 아이들이 자기를 존중하며 꿈을 안고 올곧게 자라나기를 바라서. 《섬김밥상 행복교육》책은 학부모들과 교직원, 둘레의 선생님들, 그녀가 속한 학술, 문학단체에 나누고 싶어 400권을 샀다.

그러다보니 책값으로 인세를 합해서 두 달치 월급을 들였다. 그래도 그녀가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녀에게 책값의 몇 배 되는 행복을 선물한 것 같아 즐겁다. 책을 읽은 학생들이 깨알같은 글씨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편지로 전달해 오기 때문이다. ‘편지 밖에 못 주다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책을 선물 받은 어른들 반응도 품격 있고 향기롭다. 책에서 감명 깊은 문장을 찾아내어 붓글씨로 써 보내준 안영선 시인과 강호진 교장, 잘 읽었다며 장문의 독후감을 등기로 보내주는 교육감과 정병재 교장, 출판 기념회를 해주겠다며 멀리서 달려와 밥을 사주는 권운지 시인, 직접 키운 화분을 보내주는 김은주 수필가, 출장에서 돌아가는 기차간에서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며 다음날 새벽같이 전화를 해주는 교육부 김정희 교육연구사 같은 분들이다.

하찮은 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 인품을 향기롭게 한다. 더러, 책 받았다는 문자 한 마디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물한 책이 그 집 냄비 밑받침이 될지라도 가서 잘 지내기를 기도한다.

산 책보다 직접 쓴 책은 배 아파 잉태한 자식과도 같기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