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에도 준비는 철저하게
좋은 일에도 준비는 철저하게
  • 승인 2016.09.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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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참가한 자장면 나눔봉사
배식 과정 순탄치 못해 볼멘소리
기다리다 돌아가는 사람도 생겨
좋은 행사도 마음만으론 안 돼
철저한 준비 필요함을 깨달아
허봉조
수필가
우연한 기회에 ‘사랑의 자장면 나눔 봉사’의 수혜자가 되어보았다.

봉사를 하는 것이 마땅한 나이에 봉사를 받게 되다니, 우리끼리 마주보며 어색함이 가득한 웃음을 보냈다.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날, 40년 지기 친구 다섯 명이 경주에서 만났다.

콘도미니엄 주중 무료숙박권을 가졌기에 얻은 기회였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황성공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다람쥐 가족이 꼬리를 물고 깜찍하게 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운 목소리로 밀린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던 때였다.

축구장에서는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가 한창으로 응원의 구호와 함성이 담장을 훌쩍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화물차를 이용한 자장면 볶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무대를 설치하고 가요를 부르며 흥을 돋우는 자선단체의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 여기며 우리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던 참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몇 번이나 들리는 것 같았다. 설마 했는데, 역시 우리 일행을 부르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빨리 오라는 손짓도 이어졌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맞느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을 하자, 거기 다른 사람들이 또 있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돌아왔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대 설치는 다 됐는데,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무대의 제일 앞쪽 테이블을 좀 채워달라고 했다. 활동적인 친구들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손뼉이라도 열심히 쳐주자며 장단을 맞췄다.

첫 번째 가수가 익숙한 가요를 두어 곡조 부르고 내려갔다. 사회자와 유일한 청중인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각자 두 명씩에게 연락을 하여 자장면을 먹으러 나오도록 부탁을 해달라는 요청에, 우리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왔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한 무리의 게이트볼 게임을 끝낸 어르신들이 몰려오고, 여기저기 자리가 채워지고 있었다.

두 번째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두 번째 가요를 부르려고 할 때, 주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앰프가 꺼졌다.

사회를 하던 여성이 성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유소년 축구대회 중계방송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냐며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음을 항변했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방송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데.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고, 행사 관계자들은 흥겨운 노래잔치를 포기하고 자장면 봉사만 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문제는 자장면 배식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있었다. 미리 준비된 자장 솥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었다.

그러나 반죽이 된 재료를 기계에 넣어 면을 뽑아내고, 그 면을 삶아서 물에다 씻고 그릇에 옮겨 담는 과정이 순탄치 못한 것 같았다. 일손은 충분하나 장비가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을 부라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말로는 드시고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드시라며 목청을 높였지만, 한 그릇도 제대로 맛을 보기가 어려운 것을. 기다리기가 지겹다며 일어서는 사람들이 생기고, 순서도 앞뒤가 없어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힘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좋은 일을 하러 나왔다가 공연은 무산되고 자장면 배식에도 차질이 생기니, 욕을 듣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좋은 뜻과 마음만으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일손과 재료와 장비가 적당히 맞아야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봉사를 받을 대상이 얼마나 되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멍석은 깔아놓았으나 손님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우리는 실망보다는 새로운 추억 하나 만들었다며, 기대 밖의 여행의 출발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아울러 앞으로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면 철저한 준비와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는 간접경험과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음에 만족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최 측과 우리 일행은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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