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가을 여행
  • 승인 2016.09.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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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대구미술비평연구회·미술학 박사
새벽 비를 타고 가을이 내린다. 메마른 대지뿐만 아니라 가슴을 적시는 빗소리 때문일까. 영적이고 사색적이 된다. ‘현실의 환기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싶을 때 찾는 곳’ 하고 물으면 전시장을 추천하곤 한다. 오곡백과만큼 가을엔 전시 소식이 풍성하다. 큰 규모의 전시만 소개해도 모자랄 지면이다.

부산비엔날레(9월3일~11월30일)와 광주비엔날레(9월2일~11월6일)가 시작되었고 창원국제조각비엔날레(9월22일~10월23일)와 대구사진비엔날레(9월29일~11월3일)는 개막일을 앞두었다. 각각의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전에서부터 대구지역에서도 ‘선- 삶의 비용전(5월31~10월31일)과 ‘Home Cinema전(6월11~10월16일), ‘유리상자전’을 비롯한 ‘강정현대미술전(7월15일~9월18일)’ 등 크고 작은 전시들이 줄을 잇는다.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로 부터 ‘대중이 주인이 되는 전시’, ‘사물에 예술가의 혼을 불어넣어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전시’ 등, 기획자들의 공력이 야심찬 주제로 드러난다. 성공적인 전시를 위한 임무가 막중하기에 관련기관과 관계자들은 분주하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규모에 버금가는 질과 관심일 것이다. 더하여 묵묵히 작업하는 작가들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며칠 전 모 작가를 만났다. 길을 나선 건 작가와 작업장을 두루 보고 작품을 읽기 위해서이다.

찾아간 작가의 작업장은 칠곡의 한적한 마을,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는 허름한 전원주택이다. 영근 대추알 아래 들꽃이 무성하고 땅바닥과 담벼락에 걸쳐 핀 나팔꽃 곁엔 흰 나비가 춤을 춘다. 이강산의 ‘화가’라는 동요와 가까운 곳이다. “맑게 갠 공원에서/턱수염 난 화가아저씨/나비가 훨훨 날아가고/ 꽃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콧노래를 불러가며 아주 예쁘게 그리고 있었어요/맑고 푸른 동심을.” 만난 작가가 턱수염 난 화가아저씨는 아니었지만 풍경은 얼추 비슷하다. 작업용 기계소리 때문에 옆집과 불화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포기한 것과, 콧노래에 맑고 푸른 동심만을 예쁘게 담을 수 없는 형편도 동요와는 사뭇 다르다. 작업장은 작가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이자 신천지이지만 이웃과 마찰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단서는 많다. 서적과 SNS를 이용할 수도 있고 전시장을 찾아갈 수도 있다. 도록을 통한 간접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과정을 지켜보고 작가를 만나보는 것만큼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을 듯하다. 물론 제프 쿤스(Jeff Koons)처럼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개념만 제공해도 작품이 탄생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조수를 두고 작업할 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오리작가’가 되곤 한다. 땅에서는 걷고 물을 만나면 헤엄을 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툰 날개 짓까지 겸해야하는 오리와 같은 작가. 현실은 작가에게 대놓고 만능을 원하지 않지만 자의든 타의든 만능재주꾼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야박할 만큼 작가는 하던 일에만 열중했다. 늦더위를 식힐 선풍기도 없이 작업복에 땀이 차오르는 부업을 계속하고 있다. 납품할 물건을 수일 내로 넘겨야 한단다. 작업노동이 아닌 생업노동에 몰두하는 작가를 인터뷰할 처지이다. 곧 전시를 앞두었고 10여회의 개인전 경력과 각종상패를 보더라도 그는 분명 작가였지만 생업과 본업 부업의 경계가 없다. 하여 삶의 틈을 노리는 예술노동이 되곤 한다. 말쑥한 화이트큐브에 진열된 수작들과 자자한 명성만으로 작품을 논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재능기부와 작품기부를 쉽게 요구할 수 없고, 인건비조차 계산에 넣지 않는 예술행정이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미술계에 불거진 몇몇 불신적인 사건들로 미술작품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나 처처에는 묵묵히 창작열을 불태우는 작가들이 많다. 투명한 관심과 처우 개선이 우선이다. 다양한 전시와 더불어 곧 아트페어가 가을의 이면을 장식할 것이다. 미술관형 작품과 아트페어형 작품 할 것 없이 오는 가을엔 미술에 대한 불신감을 거두고 전시장으로 걸음해 보는 것은 어떨지. 격 있는 가을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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