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치수준을 낮추자
행복의 역치수준을 낮추자
  • 승인 2016.09.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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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오디(뽕나무 열매)를 맛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새파란 오디는 익어 가면서 자주 빛으로 물든다. 그 자주 빛깔의 오디가 새까만 색으로 변할 때 오디는 완전한 단맛이 난다. 예전 까까머리 어린 시절 물놀이 하고 난 뒤 따 먹은 오디는 정말 설탕보다 더 달았다. 자주 빛 오디는 하나씩 먹어도 달았지만 한 주먹 모아서 한입에 넣고 먹으면 더 맛있다. 그 때 먹은 오디는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달콤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다시 오디를 맛 본적이 있다. 근데 그 맛은 달콤하지도 설탕 같은 단 맛도 없이 그저 밍밍한 풀 맛이었다. 뭐지? 오디가 변했나? 어느 날 오디들이 한데 모여 “세상에 단 것이 너무 많으니 우리는 좀 쉬자. 이제 단 맛 생산 중지” 이런 결정을 내리기라도 했을까. 결정을 내리고 단체 행동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것일까? 전혀 그러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분명 오디는 그 예전의 오디나 지금 뽕나무에 달리는 새까만 오디나 똑 같은 오디 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변했다는 말인가.

변한 건 바로 우리의 입맛이다. 요즘은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단 음식이 너무 많다. 우리 입맛이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어지간히 달지 않고서는 달다고 느끼지 못한다. 아이스크림이 차고 넘치고 우리가 마시는 탄산음료가 온통 단 맛이다. 초콜릿, 과자, 즐겨먹는 양념 치킨에도 단 맛이 첨가 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단맛을 내는 음식이 별로 없었으며, 혹여 있더라도 그 맛 또한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단것을 너무 많이 섭취하다보니 단맛을 느끼는 ‘역치’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그래서 어지간한 단 맛이 아니고는 달다고 느낄 수가 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저 그렇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차이일까? 둘의 차이는 행복을 느끼는 ‘역치’ 수준의 차이이다. ‘역치’란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값을 말한다. 그래서 행복의 ‘역치’수준이 낮은 사람은 미세한 자극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반대로 행복의 ‘역치’수준이 높은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고 크고 강렬한 자극이 와야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 인간의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입안에 짠맛을 느끼는 ‘역치’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음식은 연세가 많아질수록 짜다. 어머니들의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면 젊은 자녀들의 입맛에는 짜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짠맛의 ‘역치’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행복의 역치수준도 변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살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전보다 더 먹을 것이 많고 입을 옷이 많아졌음에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각 가정마다 자동차가 있고, TV가 있고, 냉장고가 있으면서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행복의 역치수준이 올라간 까닭이다. 행복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그 감각은 무디어지게 된다. 어쩌다 한번 하는 외식은 기분 좋고 맛도 좋지만 계속해서 먹는 바깥 음식은 행복하거나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역치 수준을 낮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은 삶 자체를 심플하고 담백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자극들은 우리의 감각세포를 무디게 한다. 그래서 음식 평론가들은 음식의 맛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입안의 음식물을 비우고 물로 깨끗이 헹구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입안에 어떤 음식물도 없는 상태에서 평가를 내릴 음식을 입에 넣고 철저하게 그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

우리 삶도 비우고 헹구는 정화(淨化)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도 비우고, 욕심도 비우고, 미움도 비우고 자연을 가까이 하며 깨끗한 공기를 자주 마셔주자. 그러면 삶은 심플해진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연에 가까운 사람을 자주 만나자. 속임 없는 자연스러운 사람을 자주 만나다보면 우리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 슬프면 슬픈 표정이 얼굴에 보이고 기쁠 때는 입이 귀에 걸리는 사람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억지웃음을 짓거나 무관심한 듯 괜한 무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진실 된 사람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사람도 음식과 비슷하다. 자극적인 MSG를 닮은 인위적인 사람은 우리들에게 순간의 짜릿함은 줄 수 있지만 그 만남이 오래되다 보면 우리 삶에는 좋지 않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세상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너무 가지려 하지 말고 단촐 하고 심플하게 살아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마음 밭에 ‘행복’이란 나무가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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