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초대
  • 승인 2016.09.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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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사
박경선
대구교육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사
‘초대!’ 저녁 으스름, 한강변을 걷다가 우뚝 솟아있는 간판 이름에 충격 받아 멈춰 섰다. 밥집이나 찻집 정도 될 성 싶은데 ‘초대’라니… 생일잔치, 전시회, 마케팅을 위한 행사를 할 때 주로 쓰이는 단어가 사람을 마음으로 불러 함께하고픈 목소리로 들린다. 누구였지, 이 목소리의 울림? 내면에 감동으로 가라앉아 있던 브뤼기에르 신부님 목소리가 ‘초대’ 글자에 기대어 다가온다.

김길수 교수가 쓴 <하늘로 가는 나그네> 책에서 초창기 천주교 박해시절 이야기를 읽고부터다. 조선시대 정하상, 유진길이 사제를 보내달라고 교구청에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하였다. 이유는 네 가지. 첫째, 선교 자금이 없다. 둘째, 파견할 신부가 부족하다. 셋째, 조선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넷째, 들어가면 죽는다. 정하상은 이런 거절 편지와 사제 보내달라는 편지를 함께 묶어 서방신부들에게 보냈다.

그 중 단 한 명 신부가 답장을 보내며 나섰다. “선교에 돈이 필요했다면 예수도 재벌 집 아들로 태어났을 터, 부족한 것은 자금이 아니라 신덕이다. 그리고 이 프랑스에 신부가 다수 있는데, 한 명도 없는 조선에 부족해서 못 보낸다고 할 수 있겠나?

또, 조선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면 길을 찾으면 되고. 조선 신자들은 사제 없이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여 피 흘리며 순교하는데 사제로서 순교가 두려운가? 내가 가겠다.”며 교구청에 청하여 잡히면 죽는다는 박해의 땅을 향해 출발하였다. 필리핀의 마닐라를 거쳐 마카오를 지나 내몽고 마가자까지 숨어 들어왔다. 하지만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선종한다. 그는 갔어도 그를 부른 신자들의 초대에 응한 시도가 주춧돌이 되었다.

오늘날 이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고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어디 천주교뿐이랴? 억불(抑佛)정책으로 이차돈의 목을 치고 불상의 목을 쳐 떨어뜨려도 지금은 이 나라에 가는 곳마다 사찰이 있고 부처님과 스님들이 미소로 반겨 맞이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신앙은 마음에 피어오르는 믿음으로의 초대이리라.

또한, 신앙적 초대가 아니더라도 명절이 되면 조상이 있는 곳으로 초대된다. 조상의 뼈가 묻힌 곳, 마음이 이끌리는 고향으로 자발적으로 모이게 된다.

우리는 제사를 모시는 형님 댁으로 명절 때마다 상경하게 된다. 하루 전날, 도착하면 점심 때 쯤 된다. 아즈버님은 벌써 마당에 ‘바비큐(barbecue)할 장비를 차려놓고 고기를 굽고 계신다. 둘러서서 바비큐를 먹으며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를 한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나물을 다듬고 남자들은 베란다에 나앉아 전을 부친다. 부엌일이 대충 끝나면 여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남자들의 전 부치는 실력을 품평회 하며 수다를 떤다.

제사 준비가 끝나면 종손인 아즈버님은 30여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명절 때마다 외식을 하러 나가자 하신다. 지방에서 서너 시간 씩 장거리 운전해 간 우리들은 집에서 저녁을 대충 먹고 쉬고 싶지만 명절 분위기 잡고 싶은 아즈버님 사랑의 리더십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8월에 퇴임을 하고보니, 친지들이 다 모인 추석에 퇴임 턱을 내는 것이 딱 좋을 때라 초대의 주최 측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미리 초대 문자를 날렸다. “모두들 퇴임 턱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와주세요. 추석 전날이라 5시까지 가야 식당에서 받아 준데요.”

주최 측 처지가 되고 보니 아즈버님의 베품의 깊이도 비로소 읽혀진다. ‘모두들 참 고생 많이 하며 살아왔다. 이젠 모두 살만하니 이럴 때 모여 한 때의 여유를 즐겨보자’는 그 마음의 주최가 내가 된다.

그런데 퇴임 축하 케이크를 자를 때 와인 잔을 나르는 종업원들을 보자 문득 이시영의 ‘귀가’라는 시 속 인간이 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의 구둣발이 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鋪道)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지금 내가 누리는 여유가 그들 마음을 아프게 할까 두렵다. 옛적 시골학교 교사 시절, 숙직하느라 고향에 못간 기억 위에, 추석 전날인 오늘도 일하느라 고향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 얼굴이 겹쳐 보인다. 연장 운행하는 지하철 등 이즈음이면 더 바쁜 기사님들과 버스 터미널과 고속휴게소의 직원들, 치안을 맡은 경찰, 의사, 소방대원이며 명절에 더 잘 팔리는 상품을 파는 사람들! 제마다 이런저런 형편으로 고향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과 마주하면 “아유, 저희 때문에 고향에도 못 가시네요. 복 받으세요.” 말로라도 내가 받은 복을 나누고 싶다. 무릇, 신앙으로나 고향으로나 초대받은 이는 복되고 축복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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