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 승인 2016.10.03 21: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우미
대구여성의 전화 대표
1960년 5월 11일 어둠이 짙게 내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거리에서 퇴근길 백인 남자가 체포된다. 살면서 한 번도 법을 어긴 적 없었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던 남자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1942년 나치독일의 고위관리로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의미하는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여 집결시키고 기차에 실어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맡았다.

최대한의 효율성을 위해 가스실이 설치된 기차를 고안 했고, 그 기차가 도착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수백만명의 무고한 목숨이 살해당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의 법정에 세워졌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맡은 일을 잘 하는 것 뿐 입니다. 나는 그저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며 관리일 뿐입니다.”

재판을 지켜 본 여러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극히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

8개월이 넘는 지루한 재판을 끝까지 지켜 본 독일출신 유대계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그가 유죄인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근면한 인간이다. 근면성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 있다. 실험의 참가자를 교사와 학생으로 나누고 학생이 오답을 하면 교사가 학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했다. 물론 학생역할은 실제 자극 없이 연기로 진행되었고 교사역할 참가자들에게는 전기충격으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연구수행자가 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충격은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가 높아진다고 알렸다. 최고 450V까지 충격의 강도를 높일 수 있었고 그 정도의 충격이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강도였다. 놀랍게도 참가자의 65%가 450V까지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였다.

이 실험에 대해 스탠리 밀그램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성이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시민들이 만약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사회구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며 구조를 형성한다. 나치처럼 부당한 권력은 부당한 사회구조를 만든다. 부당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 즉 생각이 없을 때 아이히만이나 스탠리 밀그램 실험의 참가자들처럼 우리는 그 부당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 구조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발언할 수 없고 부당한 구조를 개선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무능은 영화 ‘아수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권위를 가진 이나 그 권위에 빌붙어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 모두에게 비참한 종말이 될 뿐이다.

유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이 발부되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권력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합의 없이 결정한 사드도입 시도는 지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생각 없는 죄의 대가는 생각보다 끔찍할 수 있다. 생각, 즉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성찰하고 부당한 권위를 변화시킬 것인가 생각 없이 흐르는 대로 파국을 향해 갈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나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나는 어느 줄에 설 것인가.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