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
  • 승인 2016.10.06 21: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아이에게 책을 읽히겠다고 책을 방바닥에 깔아두거나 아이 눈에 띄는 곳이면 어디든 책을 놓아두시는 열혈 엄마들을 가끔 만난다. 이런 엄마들은 온 벽을 책장으로 도배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아이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많은 책을 읽어내야만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숨이 턱 막힌다. 책이 집에 가득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날까?

나는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맏이여서 다섯 살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 그때로서는 굉장한 조기교육이었다. 엄마는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한발 앞서 조기 교육을 시켰으니,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갈 것’이라고 기대하셨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가 무색하게 나는 1년도 못 다니고 피아노를 그만 둔다.

음악적 영재성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5살짜리가 감당하기에 피아노 악보는 너무 힘들었고, 이 힘든 것을 왜 감당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던 나는 피아노 학원에 안가겠다고 매일 엄마를 졸랐다.

결국 여섯 살 때 피아노를 그만 둔 나는 ‘가기 싫은 피아노 학원에 대한 공포, 무서운 피아노 선생님에 대한 기억,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피아노 트라우마 3종 세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에 몇 번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릴 때의 공포가 떠올라 배우기를 포기해서 나는 지금도 악보를 전혀 보지 못한다.

나와 달리 동생은 3학년이 되도록 피아노 학원에 가지 못했다. 나한테 한 번 크게 당했던 엄마는 동생이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라도 좀처럼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 결국 동생은 피아노 학원을 가기 위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엄마는 “가기 싫단 말만 하면 바로 피아노 끊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는 말로 동생의 학원을 허락하셨다. 동생은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동생은 꼭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피아노를 못 배우게 하면 할수록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 욕망의 유무, 이게 동생과 나의 다른 점이었다.

동생은 피아노 치기 싫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고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워서 교회 반주도 하고 좋은 연주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렸다. 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스스로 배우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러워진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는 “네가 안 배워놓고 엄마핑계 대지마라.”고 하시겠지만, 내가 배우고 싶어질 때까지 엄마가 기다려줬으면 지금처럼 악보에 까막눈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억울하다.

삶에 변하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가 통장에 100억이 있다면 월급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는가? 늘 집안에 진수성찬이 차려져있으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길까?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에 책이 가득하고 늘 책을 읽으라는 잔소리가 들리는 집에 살게 되면 ‘책을 읽고 싶다.’라는 스스로의 욕망은 생기기 어렵다. 책에 대한 아무런 결핍감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너무 일찍 배워 결코 피아노와 친해지지 못했던 나처럼 오히려 너무 빨리, 너무 과도하게 책을 읽은 바람에 책에 치이고 질려서 정작 책을 읽어야 할 사춘기에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최근 너무나 많다. 초등학교도 채 입학하지 않은 아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은 홈쇼핑 호스트이던지 학습지 선생님들이다. 책을 팔아야하는 사람들인 거다. 그들의 말에 이끌려 엄마가 집안 가득 책을 사놓고 아이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책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굳이 책을 많이 사주지 않아도 괜찮다. 요즘은 주변에 공공도서관도 많고 학교 도서관도 있으니 읽고 싶은 책은 빌려서 읽으면 된다.

수십만 원짜리 도서전집을 12개월 무이자로 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아이에게 읽히려고 오늘도 고군분투하시는 엄마들, 제발 아이 스스로 책의 재미를 알게 될 때까지 좀 기다려 주시길. 책을 읽고 싶다는 아이의 욕망은 결국 스스로의 결핍감에서 오기 때문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