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환경조형물, 차라리 눈을 감자
‘애물단지’ 환경조형물, 차라리 눈을 감자
  • 승인 2016.10.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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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건축물마다 설치되어 있는 미술장식품은 그 수만 약 1만5천여 점에 이른다. 경기도가 3천818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서울(3천332점), 부산(1천445점) 순이다. 인천(911점)과 대구(896점)도 적지 않은 양이 곳곳에 놓여 있다. 회화나 사진보다는 조각의 비중이 훨씬 높아 거의 80%에 달한다. 우리가 흔히 ‘환경조형물’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대형 조각들이 우후죽순 자릴 잡게 된 배경엔 소위 ‘건축물미술장식제도(현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있다. 연면적 1만 제곱평방미터 이상의 공동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을 신ㆍ증축할 때 건축물 규모별로 비율에 따라 1%의 비용을 의무적으로 회화ㆍ조각 등의 미술품을 설치해야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본래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통해 미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도시환경을 새롭게 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1972년 처음 권장사항으로 출발했으나 1995년부턴 의무사항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치의무자는 건축주로써, 현행법엔 미술장식품 설치가 완료되지 않으면 건축물 준공검사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는 작품성 있는 미술품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제도로 인식됐다. 삭막한 도시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에게 미술 감상의 기회 제공 및 도시환경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특히 생존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컸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상과 현실 간 간극은 넓었다. 대행사와 건축주 간 리베이트 담합이 판을 쳤고, 관행식 설치와 관리 미비로 인한 흉물양산 등의 부작용이 초래됐다. 심지어 몇몇 작가들의 독과점식 사업 창구로 변질되었으며, 비자금 조성과 탈세, 모작과 불공정 심사 논란을 유발하는 골칫덩이로까지 전락했다.

때문에 지금은 그 누구도 멍청하게 길가에 서 있는 조형물을 보며 예술가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대안이자 일상 속 예술향유가 가능한 ‘길섶의 예술’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공공적 성격이 퇴색하자 일각에선 건축주들의 인식전환을 문제로 삼는다. 하지만 그들도 미술장식제도는 난감한 존재다. 생판(?) 모르는 미술품에 건축비의 1%를 할애하자니 왠지 아깝다는 느낌이 크고, 외면하자니 준공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이도 저도 못하는 형국이다. 일부에선 왜 정부가 민간재산을 강제하는지 모르겠다며 악법 중의 악법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는 작가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다. 구조상 기업과 예술가를 알선해주는 브로커들에게 20~30%에 달하는 수수료를 주고 나면 손에 쥐는 게 거의 없는 현실은 외면당한 채 되레 시각공해를 촉발시키는 주범으로 지적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 문제는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20여년이 넘었다. 물론 미약하나마 개선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는 미술장식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자각하고 그동안 다양한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 2000년 1%였던 비율을 0.7%로 규제를 완화해 건축주들의 부담을 줄였으며 2011년엔 미술작품설치와 문화예술진흥기금 출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전의 미술장식에서 공공미술로 개념을 넓혀 건축물을 미술품으로 장식하겠다는 근대적 발상에서 벗어나려 했다. 최근에도 정부는 인천을 표본으로 한 공공미술품실태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희망을 걸었던 문화예술진흥기금 출연은 여전히 ‘꺾기’ 관행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겉돌고 있고, 사후관리의 책임소재조차 불명확해 흉물스런 조형물 확산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 또한 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다. 도시 미관이 저해되는 사례를 파악해 건물주에게 철거 또는 보수 의무를 지우려는 목적이 크다는 점, 건축주들의 문화적 참여 동기부여가 가능하거나 작가들이 마음껏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운영 현황 및 개선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제도 개선에 앞서 현장 의견도 수렴할 계획임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실체적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공무원뿐만 아니라 시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론의 장부터 마련하고 의견을 수용하는 게 순서라는 점에서 뭔가 뒤바뀐 감이 크다.

때문에 1조 원대를 훌쩍 넘어선 각종 조형예술품과 환경조형물을 접하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다니는 것, 적어도 이 시점에선 그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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