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은 아이의 사고력을 죽인다
문제집은 아이의 사고력을 죽인다
  • 승인 2016.10.2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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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엄마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이의 ‘성적향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들은 열심히 문제집을 풀린다. 그러나 문제집을 풀리는 것이 과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일까?

문제집 속의 문제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아이가 빨리 정답을 골라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집의 문제는 아이가 스스로 사고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제에는 처음부터 질문과 대답만이 존재한다. 문제는 질문하고, 학생은 질문 받고, 문제에는 답이 정해져 있고, 학생은 그 답을 찾아내야한다. 객관식시험은 이 구조의 결정판이다.

객관식 문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답을 골라낼 능력 유무를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정답이 아니라면 아이의 모든 대답은 오답의 멍에를 써야한다. 문제 속에 아이가 생각하고 고민할,?시간과 공간 같은 것은?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이란 한 치도 용납되지 않는다. 정답을 골라내지 못하면 아이는 야단을 맞아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이 학원에서, 또는 집에서 만나는 문제집의 본질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과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모델이 된 미국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아이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하는데 왜 굳이 우리나라만 이렇게 객관식 문제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것은 우습게도 우리나라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객관식 시험이 도입된 시기는 군사정권이 시작되는 1960년대 초반이다(그 이전의 시험은 대부분이 주관식이었다. 고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생각해보라). 국가의 시험 개입은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혼란을 만드는 곳’인 교육현장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뒤로 숨기고 ‘공정, 효율, 객관’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객관식 시험을 강력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혼란한 시기에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도록 주관식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더구나 국가가 시험을 관리하게 되면 국가는 교육현장을 간단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군사정권은 국가가 강력히 통재하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게 하고, 그 시험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판정하는 사회야말로 객관적이고 또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객관식 시험에는 누구도 개입하기 어려운 불변의 정답이 있기 때문에 객관성, 또는 공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신화의 이면에는 다양한 능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따위는 묻어버려도 좋다는 정치적 선택이 들어있다.

문제집에 있는 객관식 문제들은 질문보다 답이 먼저 존재하는 시험이다. 답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가 만나는 세계가 닫힌 세계라는 뜻이다. 아이는 12년 간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객관식 문제를 반복해서 푼다. 이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아이가 배우는 것은, 모르는 게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과 외우라면 무조건 외우는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 없는 순응이다. 이 긴 기간을 통해 아이의 뇌는 화석화된다. 수많은 문제집, 학습지를 풀면서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다각적인 방향을 찾아가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과연 이 아이가, 아이의 가능성과 다양한 역량을 묻는 현재의 입시제도 하에서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까? 혹여 대학에 입학을 했다 하더라도 그 후에 자신 앞에 놓인 주관적인?인생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을까??

아이가 더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주관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길 원한다면, 제발 문제집은 좀 던져버리자. 문제집을 쉬지 않고 풀리는 학원이나 학습지 같은 건 저리 좀 치워버리자.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열심히 풀리는 것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창의성, 목표의식, 자발성, 창조적 사고력 등 아이의 수많은 좋은 점을 짓밟은 행위이다. 학원에 더 빨리 보내고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공부시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과 점점 더 멀어지는 일이다. 최근 입시는 아이의 점수가 아니라 아이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아이에게 문제집 좀 들이밀지 말자. 그냥 아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좀 주자. 그리고 주관식으로 묻자. “너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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