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 승인 2016.10.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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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그날 나는 흰 마스크를 쓴 네 명의 건장한 사내에게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들려 끌려가고 있었다. 1987년, 6월의 낮볕이 뜨거운 오후 계산 오거리에서였다.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에 나는 끌려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며 저항 하였다. 그때 그 곳을 지나던 한 행인이 마스크 쓴 소위 ‘사복’들을 향해 여학생을 왜 끌고 가느냐며 항의를 했다. 그 분의 항의로 사복들의 손목에서 잠시 힘이 빠진 사이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검은 뿔테 안경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콤비 자켓을 입고 있었던 중년의 신사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가 대학 3학년이던 1987년. 전두환군사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며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전국에서 성난 민심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항거했다. 그 항거로 인해 전두환에 의한 폭압적 제5공화국은 종말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그 뜨거운 역사의 현장에 나도 함께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기억한다.

지난 10월 29일. 청계광장에 수만의 성난 민심이 다시 집결했다. 이 땅의 주권자들은 부정하고 부패한 정부와 무능한 대통령을 규탄하며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소리 높여 외쳤다. 최순실이라는 한 민간인에게 국정이 어떻게 농락당했는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전문성도 없는 일개 개인에게 아예 국정을 통째로 맡겨 버린 것으로 보인다. 한 나라의 명운과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사안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어이없는 사태 속에서 그들의 농간으로 삶이 파괴된 국민들의 고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그 시간 동안 구조의 골든타임은 하릴없이 지나갔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은 애끓는 부모들의 절규 앞에서,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아직도 모른다. 정부는 왜 그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국민들이 죽어갈 동안 국가는 구조의 책임을 방기했고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자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세월호유가족들의 고통은 내가 아는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가 없다.

벼락처럼 발표된 개성공단 폐쇄. 남북교류, 전쟁방어효과, 중소기업 살리기, 일자리 창출, 북한변화 등 수많은 실익을 담고 있는 개성공단을 입주기업들이 미처 물건을 빼내올 시간조차 주지 않고 폐쇄해 버렸다.

이 결정에조차 최순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개성공단에서 생계를 이어갔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기업가들은 기업을 잃었으며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개성공단에서 4년간 머물렀으나 개성공단폐쇄와 싸우느라 교수직도 그만둔 김진향 전 카이스트 교수는 개성공단관련 기업가들이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 상태로 누구나 병원에 다니신다”고 전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고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성주군민들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사드배치에 최순실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도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피해당사자인 성주군민, 김천시민과 어떤 합의도 없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과 어떤 논의의 과정도 없이 밀실에서 뜬금없이 결정된 사드배치에 국민의 재산권,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보위협은 오히려 더 커졌다.

최순실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끝까지 최순실을 비호하려 했던 여당은 철저히 각성해야 한다. 그 무리들의 전횡에 동조한 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1987년 6·10항쟁으로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직선제 개헌을 불러왔던 것처럼 부당한 권력을 바로 잡을 힘은 오로지 국민에게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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