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방황이 아이를 성공시킨다
포기와 방황이 아이를 성공시킨다
  • 승인 2016.11.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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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우리 집의 가훈은 ‘안 되면 말고.’였다. 물론 학교에서 가훈을 써오라고 하면 ‘최선을 다하자’ 같은 건전한 가훈을 써내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에 유유히 흐르는 가풍은 ‘안 되면 말고’였던 게 확실하다.

엄마는 “열심히 해라.”라고는 하셨지만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같은 얘기는 안하셨다(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람단, 서예부, 문예부, 영어클럽, 수영부, 주산학원, 미술학원, 피아노, 기타, 웅변, 교회 학생회까지 이것저것 참으로 많은 것들을 집적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그냥 알았다고 하셨다. 아빠는 더했다. 아빠는 수많은 사업과 사업의 실패를 통해 ‘안 되면 말고’의 정신을 가족들에게 확실하게 증명해보이셨다.

그 모든 것들을 그만둘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건 나랑 안 맞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데? 다른 거, 더 재미있는 게 없을까?’였다. 나는 배운 것을 그만둘 때마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포기의 시간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포기를 싫어하는 민족이다. 그만두거나 포기한다는 말의 뉘앙스에는 벌써 ‘실패’라는 어감이 섞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게 싫어서 우리는 ‘포기’를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잘 하는지, 자신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다. 그런데 아이가 싫어하는 것,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자꾸 포기하다보면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엄마, 나 이건 포기 못하겠어. 이건 도저히 포기가 안 돼.” 그게 바로 우리 아이의 적성이다.

아이가 성공하려면 본인이 좋아하고 열망하는 것을 해야만 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 성공한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나머지 것들은 포기해야만 한다. 아이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릴 때 찾아내어 적성을 키운 인물, 많지 않다. 오히려?온갖 방황 전전하다 30대 이후에 자신의?길 찾았던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들이 한결같이?그 방황의 시간이 자신을 키운 힘이라고 천편일률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거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수많은 감탄스러운 영화를 만든 김지운 감독은 대학교를 중퇴하고(그것도 복학 시기가 언제인지 몰라서) 집에서 10년간이나 백수로 지냈다. 비디오를 보면서 말이다. 비디오 보면서 10년 간 뒹굴고 있는 다 큰 자식을 바라봐야 했던 엄마의 답답함은,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접촉사고를 냈고, 이 사고처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상금 천만 원이 걸린 시나리오 공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응모했다가 덜컥 1등으로 뽑힌다. 그리고 본인의 ‘조용한 가족’ 시나리오를 영화화 할 수 있는 마땅한 감독이 없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감독이 돼서,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이 되었다. 김지운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자신이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긴 백수시절에 쌓은 내공 때문이라고.

우리 아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러니 아이가 자신이 뭘 잘 하는지 모른다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거들랑, 너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았고 너는 더 큰 세상과 만나면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유롭게 말해주자. 조급해서는 그 길과 만날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의 어머니가 김지운 감독에게 “어디 공장에라도 빨리 취직해서 백만 원이라도 벌어와!”라고 다그쳤다면 우리가 어떻게 저 훌륭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우리 아이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해낼지, 지금은 절대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기다려준다면 말이다. 아이에게 포기의 기회를 주자. 방황의 시간을 주자. 그 시간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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