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ria, 바닷가재
Aporia, 바닷가재
  • 승인 2016.11.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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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아침 일찍부터 인터폰이 울렸다. 택배를 빨리 찾아가라는 경비원의 목소리가 짜증이 묻어나서 유쾌하지 않은 심정으로 관리실에 들렀더니, 사과박스 크기의 스티로폼 용기를 건넨다. 발신인을 보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봄’,‘이여름’,‘이가을’,‘이겨울’이라는 이름으로 잊지 않고 커피나 과일을 보내 주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익명의 독자였다.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알게된 인연들도 어느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같다. 여태 뭐하는 분인지 하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른 채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독자들이 간혹 있다. 감사할 일이다.

찾아온 박스를 열어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태 가까이에서 본 적조차 없던 바닷가재 세 마리가 우주괴물 에일리언을 빼닮은 채 정성스레 포장되어 천연덕스럽게 드러누워 있었다. 유일한 병기(兵器)일 수 있는 집게 두 개는 꽁꽁 묶여 있었지만, 갑각류의 특징대로 껍질은 다소 위압적이었다. 어찌되었건 먹거리의 본질을 재인식하고, 짐짓 태연한 척 하며 찜통에 그냥 쪄 먹으면 된다는 가장 쉽고 편한 모바일 정보대로 세 마리 모두 푹 삶아서 식탁으로 옮겨와서 뚜껑을 여는 순간 다시 한 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호전(好戰)적인 무사처럼 붉은 핏빛으로 변색하고 이번에는 집게까지 해제되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장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모르는 내 모습을 보며 우습게도 학창시절 읽었던 철학서에서 본 아포리아가 갑자기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포리아(Aporia)는 철학 용어이기도 한데,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쓰는 표현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상대를 아포리아의 벼랑 끝으로 내몰아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플라톤은 필연적인 로고스(logos)를 펼치는데, 반드시 부딪히게 되는 난관을 아포리아라고 정의를 내린 바가 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연적인 아포리아 속에 있는 자는 수많은 질문 속에 놓이게 되고, 그 질문에 답을 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전체와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이른바 바닷가재와 나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풀어내어야만 ‘익숙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가정에 보내주신 분의 정성까지 더해져서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들었다.

결국 바닷가재, 녀석은 두 개의 조리용 가위를 망가뜨렸으며, 마침내 망치로 갑옷들이 산산히 부서지고서야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냈다. 굳건한 껍질 속에서 끄집어 낸 살을 발라서 아들의 입에 먼저 넣어 주었더니 ‘맛은 있네. 근데 영덕대게하고 맛이 거의 똑같네. 물론 그거보다 먹는 건 더 어렵긴 하지만’하고 소심한 뒷 감정을 드러내더니 히죽거린다. 동족애랄까. 함께 전리품을 획득한 장수들 마냥 부자간에 괜한 웃음이 번진다. 맛이야 둘째 치고 불과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찾아 왔던 가벼운 공포와 당황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먹을 게 별로 없었다는 둥 먹지도 못하는 대가리가 반을 차지한다는 둥 더 큰걸 보냈더라면 아마 바다로 되돌려 보내 버렸을 거라며 농담을 하는 여유까지 부린다.

침묵과 고요를 도구로 새벽에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이웃들의 사소한 일상들이 불편할 때가 잦다. 이를테면 택배나 본인이 직접 수령해야 하는 우편물들이 그렇고, 층간 소음이 그렇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면, 분주한 보편적인 소음들이 힘들 때가 많다. 연립주택의 경우 벽에 못이라도 하나 박으려고 하다가도 어쩌면 옆집에서 누군가가 곤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망설여지고, 조심스럽게 망치질을 하다가 손을 내려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주거에 대한 환경은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도시를 건설해서 생활패턴에 따라 주,야간형으로 나누어 구획 정리하여 타운을 건설해 보는 건 어떨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른 바 야간형 주거지역에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비롯해서 관공서 직원들도 저녁에 출근을 해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새벽 세시쯤 주민 센터에 들러서 민원서류를 발급받고, 기왕 나선 김에 새벽 다섯 시쯤 심야전용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그랬으면 참 좋겠다. 상상만으로도 즐겁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포리아를 만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행운일 수도 있다. 혼자 살아가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재와 나는 먹이사슬 ‘관계’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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