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트럭
파란 트럭
  • 승인 2016.11.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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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성의전화 대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뒤집어 지고 있는 최근 겪은 일이다. 출근하고 얼마 있지 않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 범퍼가 깨졌어요!” “네?” 다짜고짜 차 범퍼가 깨졌다니 어리둥절했다. “지나가던 트럭이 범퍼를 깨고 그냥 갔어요.” 찰나의 패닉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상황파악을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출근하며 골목에 세워 놓은 차를 누가 치고 그냥 갔나 보았다. 골목에 급히 세워 놓은 차를 이상하게 주차하지는 않았는지 염려하며 차가 있는 장소로 갔다. 오토바이를 앞에 둔 젊은 청년이 내 차의 뒤 범퍼를 가리키며 지나던 트럭이 범퍼에 부딪혔는데 그냥 갔다는 것이다. 도망가는 트럭의 뒤꽁무니를 찍은 사진을 청년은 내게 보여 주었다. 뒤 범퍼 모서리 일부가 조금 깨지고 파란 페인트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고맙다는 나의 인사를 뒤로하고 청년은 금방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험회사로 전화 하니 보험회사에서는 차적조회가 불가능하다고 신고해야 한다고 한다. 무보험차량이면 어떡하나, 작은 트럭을 몰고 다니면 형편이 어렵지는 않을까, 사람을 친 것도 아닌데 뺑소니라고 크게 처벌 받는 것은 아닐까 마음약한 나는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트럭주인을 걱정하며 근처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지구대 수화기 너머 여경은 차량을 갖고 파출소로 와 달라고 했다.

잠시 뒤 순찰차량이 도착하고 제보자가 찍은 사진의 차량번호를 신고하고 일련의 신고절차를 밟았다. 제보자가 무척 고마우면서도 제보를 하고 오히려 조사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받을까봐 염려스런 마음을 안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얼마 뒤 파출소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차주를 잡았으니 상급서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마무리해야 할 일 때문에 난색을 표했더니 가해차주가 있을 때 함께 조사를 받도록 협조를 부탁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경찰서로 향했다.

교통계가 있는 건물에 도착하니 담당 경찰관이 건물 앞에 주차할 곳을 안내한다. 과일행상을 하는 일흔의 할아버지가 차주였다. 무슨 일인지 담당경찰과 차주는 서로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경찰은 뻔한 사실에도 할아버지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며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건물 밖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선처를 부탁할 터이니 무조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시라고 달래면서 다시 경찰관 앞으로 갔다. 벽에 걸린 티브이에서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를 알리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위에서 법을 안 지키니까 국민들도 법을 우습게 알아요. 법이 왜 있는데 법을 그렇게 우습게 아시면 법대로 처벌할거에요!” 일선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주체로서의 자괴감과 분노가 경찰관에게서 느껴졌다. 법을 지키지 않는 ‘윗물’에 대해 쌓인 분노 때문에 사소한 위법행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가해차주에게 더 화가 난 것으로 보였다. 나는 가해차주에 대한 선처를 당부 했다. 차주도 “사는 것도 힘든데 잘 봐주소. 아까는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합니다.”라며 경찰관에게 사과를 했다. 그 말을 들은 경찰관은 “할아버지만 힘든 게 아니라 나도 월급 받아 애들 키우고 공부 시키는 거 힘들어요.”라며 대꾸했다. “경찰도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인데 요즘 같으면 세금 내는 게 억울하시겠어요.”라는 필자의 말에 “국민들도 모두 세금 내는데”라면서 경찰관은 말끝을 흐렸다. 대통령 뒤에서 입에 올리기도 참담한 국정농단을 일삼으며 이를 방조한 대통령은 자기책임이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비선에게 나라가 온통 엉망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책임을 통감해야 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검찰의 포토라인에서조차 부끄러움을 모르는 오만방자한 표정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지난 토요일 백만의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거리로 모였다. 세금 내는 국민이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냐며 대통령의 범법과 실정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었다. 수많은 파란트럭의 서민들과 월급생활자들은 매일 매일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내며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국민들이 좌절하지 않고 기쁘게 세금을 낼 수 있는 국가가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 한다. 그리고 백만의 함성 속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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