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이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승인 2016.11.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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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예전에 문화센터에 특강을 간 일이 있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쉽게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을 끝내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엄마가 교실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는 짐을 챙기고 있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이렇게 돈 들여 수업해놓고 또 일기 못쓰면 바보야 바보!”

깜짝 놀라 그 엄마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째려보는 나를 못 본건지 이 엄마는 아이가 짐을 다 챙길 때까지 바보란 말을 예닐곱 번은 반복하며 아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칠판지우개로 엄마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아니, 글쓰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심오한 내면고백인데,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한 시간 반짜리 수업을 듣고 술술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화를 참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니,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되면 아이들이 이런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지요. 일기를 쓸 때 잘 쓴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그러나 그 엄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가 짐을 다 싸들고 나가는 순간까지 이제 일기를 못 쓰면 바보라고, 바보같이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아이가 심하게 걱정 되었지만 오히려 아이는 그런 순간을 수천 번 맞이했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짐을 싸서 내게 인사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엄마와 아이가 떠난 빈 교실에서 오래 앉아있었다. 작은 성과에도 칭찬받고 격려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야단맞고 바보취급 받으며 사는 아이의 처지가 한없이 안쓰러워서 견딜 수 없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친다한들 집에 가서 저런 엄마랑 다시 만나야 한다면 그 아이를 무슨 수로 돕겠나, 하는 마음 때문에 허망했다. 내가 아이들 수업을 그만두고 엄마들에게 ‘학부모 강의’를 하기 시작한 이유다.

만약 그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엄마가 하는 말을 그대로 녹음해서 다시 들려줄 것이다. “당신이 내뱉은 이 말을 누군가 당신에게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는 바보’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엄마로부터 하루 종일 들으면 아이가 어떻게 건강하게 자라겠어요? 당신이 하는 짓이 어떤 짓인지 알기나 해요? 아이의 삶을 파괴하는 비열하고 잔인한 짓이에요! 진짜 바보는 당신이야!” 멱살을 잡고 외치고 싶다.

그래, 우리도 엄마로부터 지지와 격려 별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우리의 엄마들은 애정 표현에 서툴었던 분들이고 욕도 잘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 인생이 엄마 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예전에 엄마가 했던 거친 말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먹고 살긴 힘들고 거느려야할 자식이 많아 지쳐서 했던 말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말을 마음속의 상처로 남겨놓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엄마들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집요한 면이 있다. 즉 ‘내가 이렇게까지 투자했는데 너는 왜 투자한 만큼 결과를 안 보여주는 거니? 엄마친구 아들은 몇 등하던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 엄마가 그 친구보다 못한 게 뭐 있어서? 너의 성적이 우리 집 수준이랑 어울린다고 생각 하니?’ 등등의 생각을 녹여서 아이를 협박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

아이는 내 아이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다. 나와는 별개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아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이구 저런 바보! 이렇게 공부해서 뭐 먹고 살래? 너 때문에 내가 살맛이 안 난다, 이런 것도 모르고 뭐했냐?”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으신지? 그렇다면 그 말을 남편이 내게 한다고 생각해보라. 직장상사나 시어머니가 한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매일 들어야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통일지도 가늠해보자. 남편과는 이혼하면 되고 직장은 때려치우면 되지만 엄마는 바꾸지도 못하니 아이의 이 끝없는 고통을 어쩌란 말인가?

엄마는 다그치고 야단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가면 이유도 묻지 않고 치마폭에 감싸주는 사람이 엄마다. 방황하고 대들어도 믿어주는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는 사람이다. 우리 제발 그런 엄마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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