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면한 그녀들의 이야기
우리가 외면한 그녀들의 이야기
  • 승인 2016.11.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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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마당 시각아카이브: 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 전시회에 부쳐
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2002년 대구여성회에서 대구지역 성매매여성 실태조사 보고서가 나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말을 듣지 않는 여성에게는 “상품에 기스가 나면 안되니까 얼굴을 제외한 몸에 멍이 들지 않도록 얼린 페트병에 수건을 말고 옴 몸을 때렸다”, “생리가 있을 때는 솜으로 생리혈을 막고 손님을 받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기 위해 긴 밤 손님을 받으려 했고 그 손님이 잠들면 다시 다른 손님을 받아야 했다”, “너무 힘들어 도망가면 경찰이 다시 포주에게 우리를 넘겼다. 선불금이 큰 빚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등등.

갖은 욕설과 성추행, 모욕은 그곳의 여성들에게는 늘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950년대나 60년대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먹고 살기 위해 때로는 인간성마저 내려놓아야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집에서 차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서 같은 하늘아래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일이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살아가면서 이다지도 처참한 여성들의 삶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처절한 여성들의 일상을 자신의 삶과는 완전히 분리한 채 단지 순간의 쾌락을 위해 그 무시무시한 착취적 구조를 외면하고 단돈 몇 푼에 그녀들의 육체와 인간적 존엄성을 농락한 구매자들은 그 여성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딸이었으며 누이이자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2000년 군산 대명동 성매매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감금된 채 쇠창살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던 대낮 포주가 밖으로 잠가 놓은 문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여성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 그 장소에서 불과 100m거리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날고 싶다. 훨훨 새가 되어 꽉 막힌 곳을 벗어나. 베란다 중앙에 있는 새장을 보았다.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날 보는 것만 같았다. 창살 틈으로 새가 말 한다 짹짹. 그 모습은 내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남들이 알아들으면 어찌할 방법을 가르쳐줄 텐데. 아무도 모른다.” (대명동 화재 희생자의 일기 중)

20대 초반 청춘의 꿈을 설계해야 할 그 나이에 철창 속에 자신의 육신과 꿈마저 감금당한 채 성착취를 당한 참혹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은 성매매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폭력적인가를 죽음으로써 고발해 냈다. 대명동 화재참사는 성매매가 여성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무수한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죽음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대구여성인권센터 주관으로 봉산문화회관에서 11월23일부터 12월 24일까지 일련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한 ‘자갈마당 시각아카이브: 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예술로 사회의 그림자 뒤에서 참혹한 인권유린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들의 현장과 목소리, 발자취들을 예술로 형상화 한 것이다. 그와 함께 그들의 고통이 바로 우리의 고통이라는 것을 발로 뛰며 가슴으로 외치고, 연구 작업으로 보이지 않던 그들의 역사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위치시킨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오랜 노고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지난 2월부터 작가들과 자갈마당 역사를 기록하는 ‘자갈마당 기억 변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신박진영 대표는 “이번 전시회는 도시 개발로 묻혀버린 자갈마당의 어두운 역사와 장소,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문화적 방법론을 통해 자갈마당의 어두운 역사를 기록한 이번 전시가 여성인권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한 매체는 전했다.

자갈마당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장소를 대상화 하지 않고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작업들을 펼친 작가들의 열정과 따뜻함,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대가 전시장 곳곳에 묻어난다. 작가와 활동가의 경계를 넘어 작가의 작품에 활동가와 자원봉사자가 함께 했다. 성매매피해여성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임을 알리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지독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대구인권센터의 자료들 또한 설치미술이 되어 승화된 역사로 관객들에게 다가 온다.

작가와 활동가들이 다양하게 승화시킨 그녀들의 삶을 이 지면으로는 제대로 전할 재간이 없다. 우리 안에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부정하고 싶었더 자갈마당의에 대한 직면을 통해 우리는 더 성숙한 우리로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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