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털이 배를 가라앉힌다
가벼운 털이 배를 가라앉힌다
  • 승인 2016.11.3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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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작은 것이란 없다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문득 ‘홍취침주’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기러기의 솜털도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작거나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홍’은 큰기러기를 말하고, ‘취’는 새들의 앞가슴에 난 가벼운 깃털을 말합니다. 털 모(毛)가 셋 겹쳐 많다는 느낌을 줍니다.

큰기러기는 가슴에 털이 많고 부드럽습니다. 한 아름을 안아도 별로 무겁지 않을 것입니다.

‘침’은 가라앉다, ‘주’는 배를 뜻하니 결국 이 말은 ‘가벼운 깃털도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 됩니다.

옛날 어느 곳에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이웃 어촌에 들렀더니 마을사람들이 큰기러기를 여러 마리 잡아 털을 뽑아 놓았는데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음, 저것을 사다가 북쪽 추운 곳에 팔면 돈을 좀 벌 수 있겠군.’

어부는 그 털을 사서 배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깃털이 바람에 날리자 가마니를 덮어가며 높이 쌓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이 걱정하였습니다.

“여보시오. 아무리 가벼운 털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앞이 보이지도 만큼 수북이 실으면 되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뱃전을 보니 실은 둥 만 둥 매우 가볍소.”

이윽고 어부는 북쪽을 향해 배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가다보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마니로 덮기는 했지만 새어든 빗물이 깃털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젖은 깃털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배가 좀처럼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힘들어. 하지만 저 털을 말리면 금방 가벼워질 거야.”

어부는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이 때, 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깃털은 더욱 많은 물기를 머금고 말았습니다.

이제 배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큰일 났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배는 가라앉다니!”

그제서야 어부는 깃털을 바다로 내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휴, 무거워. 세상에 젖은 깃털만큼 무거운 것도 또 없을 거야.”

어부는 계속 깃털을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모두 던지기에는 아까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남겨두어야 말려서 얼마라도 건질 수 있을 거야.’

어부는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배는 더욱 기울고 힘은 모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부는 주저앉았다가 일어설 힘조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밤이 되자 별은 초롱초롱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부는 젖은 깃털을 끌어안은 채 낑낑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벼워 보이는 것이라 해도 많이 쌓이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처음부터 욕심내어 많이 실은 것도 안타깝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깃털을 조금이라도 남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젖은 깃털은 아무리 말려도 처음 깃털만큼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배까지 가라앉고 말았으니 여간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어부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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