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
  • 승인 2016.12.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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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신동엽의 시 ‘산문시 1’의 첫 대목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68년에 쓴 시이다. 대통령이 딸아이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칫솔 사러 오고, 광부들도 어려운 철학서나 동양고전 혹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총리도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역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다. KTX 역사 안까지 전용차를 들이대 민폐를 끼친 황교안총리를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다.

신동엽의 시가 보여주는 풍경에서 무지막지한 권력에 대한 반발과 비인간적 노동환경에서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만들어가야 할 세상에 대한 소망, 관료와 시민이 평등한 탈권위적 사회에 대한 꿈이 느껴진다. 신동엽시인이 꿈꾸었던 세상은 바로 일방적 권위가 사라지고, 노동자들도 여유를 갖고 지적 추구를 하며 권력자와 시민이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세상,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였을 것이다.

4.19혁명을 거쳐 87년 6월 항쟁까지 권력의 횡포에 맞선 국민들의 저항은 마침내 탈권위적 민주정권을 만들어 내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시의 마지막 구절 또한 대통령이 권위를 벗고 친구 일법한 시인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끝맺는다. 우리는 한 때 그런 대통령을 만들었고 지켰지만 끝내 그이를 비운 속에 잃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배고픔을 면하게 해 주었다는 골수에 맺힌 신화는 부도덕한 기업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국토를 황폐화 하며 언론과 사법부 독립의 훼손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는 상상초월의 국정농단을 가능하게 했다. 배고픔을 면하게 해 준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아니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견뎌 가며 저임금을 감내했던 수많은 노동자들, 도시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를 견뎌야 했던 농민들, 가장 밑바닥에서 질시를 받으며 외화벌이에 한 몫을 했던 기생관광 미군기지 성매매피해여성 등 희생을 감당한 국민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꿈꾼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이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나는 꿈꾼다. 시간에 쫓겨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일 하면서도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고를 당해야 했던 억울한 청춘이 다시는 없기를,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고 해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기를, 시민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고 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이 넘쳐 나기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당당하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법부와 검찰이 당연한 사회를 꿈꾼다. 국민의 생명을 하늘처럼 여기는 권력, 어떤 차별에도 단호하여 시민의 인권이 당연하게 지켜지는 사회를 꿈꾼다.

지난 현대사를 통해 수많은 좌절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천만에 가까운 촛불이 되었다. 이제 그 촛불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희망이 되었다. 나는 그 희망을 믿기에 토요일마다 찬바람 에이는 거리에서 촛불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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