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해결
정의로운 해결
  • 승인 2017.01.0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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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화원동산은 온통 안개로 가득 했다. 한치 앞이 아득한 희뿌연 안개를 헤치며 그래도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겠다고 구름처럼 언덕으로 모여 들었다.

인터넷에 공지된 해돋이 시간에 맞추느라 딸아이와 잰걸음을 재촉하며 드디어 언덕에 다다랐을 무렵 딸아이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엄마, 하늘이 보여!” 뿌연 흐릿함으로 가득했던 공간의 일부가 열리며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의 첫 해는 그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를 물리치고 저 먼 산으로부터 떠올랐다.

새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수많은 사안들이 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국정교과서의 정상화, 개성공단 재가동과 사드 철회 등 어느 것 하나 가벼울 수 없는 문제들 중에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 지난 12월 28일로 일 년이 되었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무효화이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가려진 역사 속에서 처음 실상이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은 일본제국주의의 잔혹한 전쟁범죄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 이후 전쟁범죄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질 수 있었다. 1992년 1월 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당시 일본 총리 방한에 맞추어 낮 12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개최했다.

그 날로부터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어린 나이에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겪어 내어야 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매주 수요 집회에 참여하여 그들이 저지른 만행과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배상을 촉구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일본정부의 집요한 회유와 민간보상을 물리치고 꿋꿋이 견뎌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할머니들의 열망을 하루아침에 짓밟아 버리는 폭거였다. 합의의 과정에서도 정부는 죽어서도 씻지 못할 한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오던 피해 당사자 할머니들에게 한 마디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아베총리는 거듭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천명했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해결되었다는 것인가. 일본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에게 어떤 사죄도 하지 않았는데, 아베정권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조차도 부정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연변에서 돌아가신 필자의 고모도 ‘처녀공출’을 피해 14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시집을 갔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필자의 어머니는 ‘처녀공출’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처녀공출’이라는 말의 의미는 일본군위안부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강제동원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영화 ‘귀향’에서도 보여 준 것처럼 피해자들은 바닷가에 조개를 주우러 갔다가, 혹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무지막지하게 끌려가야 했다. 일본정부는 그러한 강제동원의 책임을 아직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피해생존자와 국민들의 분노에 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이라는 것을 출범시켰다. 그 과정에서 피해생존 할머니들을 몰래 몰래 찾아다니며 그들이 벌인 꼼수는 피해할머니들을 더욱 좌절하고 분노케 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의 범죄사실 인정과 진심어린 사죄, 그리고 그에 따른 배상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생존할머니들의 치유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철회는 새 시대를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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