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엄마도 당한다
탄핵은 엄마도 당한다
  • 승인 2017.01.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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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를 지켜봤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손에 필기구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핸드폰이 아니라 수첩을 꺼내든 장면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낯선 풍경이라 TV화면을 한참을 쳐다봤다. 그들이 낯선 풍경을 연출한 이유는 청와대가 기자간담회장에 카메라, 녹음기, 핸드폰을 지참할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해 만나자는 청와대는 모든 것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할 질문내용과 질문 순서까지 정해줬다.

이러려면 기자간담회는 왜 하자고 한 건지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고초를 겪고 있다”거나 이미 명백히 밝혀진 부분도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시치미를 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 국민이 다 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에 대해서 “세월호, 작년인가요? 재작년인가?”라는 말을 할 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국민이 4년 내내 박근혜 정부에게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은 ‘소통’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끝까지 소통을 거부했다. 아버지 시대에 하던 그 방식이 지금도 먹힐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정말 국민을 개·돼지로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은 내 얘기를 듣기만 하면 된다”라는 그들의 방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을 기획하면서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니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소통, 해줄게. 만나면 되잖아.’ 하지만 ‘소통’이란 만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듣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의 이야기를, 국민의 입장에서 듣고,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나쁜 정부가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하면서 만들어졌듯이, 나쁜 엄마도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나쁜 엄마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공부 열심히 해” “방학인데 그렇게 빈둥거려서 어떻게 다음 학기를 따라갈 거야?” “다른 애들 봐라. 너 만큼 공부 안 하는 애 있나!” “어떻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냐!”

아이가 왜 공부를 어려워하는지는 들으려하지 않고 엄마가 하고 싶은 말만 떠든다. 그 과정에서 “엄마, 학원에 가기 싫어.” “공부가 너무 힘들어.” “놀고 싶어”라는 아이의 의견은 묵살 당한다. 엄마는 아이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공부 안하는 너는 틀렸고, 공부시키는 나는 맞다’는 확신만 있다. ‘광장의 촛불은 민심이 아니라 종북 빨갱이들의 조직적 활동’이라는 그들의 믿음이 확고한 것과 마찬가지다.

엄마가 이렇게 불통한다 해도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직은 엄마가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가 두렵지 않은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엄마에게 대들고, 반항하고, 입을 닫아버리거나, 심하면 가출을 하면서 엄마를 거부한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엄마를 탄핵시켜버리는 것이다. 엄마들은 “쟤가 안 저랬는데 왜 저러나!” 한숨을 쉬며,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그렇다거나 사춘기라서, 중 2라서, 등의 이유를 대지만 원인은 아이에게 있지 않다. 원인은 엄마에게 있다. 아이와 소통하지 않고 명령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맞고 너는 틀리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탄핵되지 않고 가정에서의 정권을 유지하려면 “엄마 얘기를 들어!”가 아니라 “네 얘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해야 한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엄마가 맞다고 고집부리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탄핵시키면 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 다음 정부는 국민과 소통할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를 바꿀 수 없다. 다른 엄마를 찾아가서 소통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제발 불통을 멈추자. 아이와 소통하자. 아이의 이야기를, 아이의 입장에서 듣고,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것이 아이로부터 탄핵되지 않고 오래오래 좋은 엄마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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