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조증과 일상의 울증
광장의 조증과 일상의 울증
  • 승인 2017.01.1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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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광장의 열기는 늘 뜨거웠다. 분노의 힘으로 모였지만 경쾌하고 밝았다.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때로 풍자가 가득한 피켓과 기발한 시위용품을 들고 함께 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백만이 모이고 천만이 모여도 큰 사고 한 번 없이 치루어진 시위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것은 다시 우리 시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부정의한 세력들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와 그 함성은 새 시대에 대한 소망과 희망으로 우리를 들뜨게 했다.

광장이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는 다시 일상이 펼쳐진다. 싼 이자에 무리해서 산 아파트 대출금에 가슴이 답답하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 최악의 청년백수시대 기사는 암울하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은 제자리다. 경기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숨과 불안만 늘어 간다. 새로 개업한 동네 식당의 텅 빈 의자들을 보면 저 가게가 얼마나 버틸까 걱정이 앞선다. 광장의 조증 뒤의 일상은 더 우울하다.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 삶의 울증이 심각할수록 현장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광장의 조증을 갈망한다. 삶의 울증과 광장의 조증 사이의 간격이 넓을수록 광장을 대신하는 정치의 공간에서 대중의 인기를 끄는 자는 두테르테나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다. 그들은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 사냥과 검투의 스펙터클이 끊임없이 대중을 흥분시킨다. 삶에 남은 ‘흥분’은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발표된 엄기호의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한 대목이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일상은 삶의 울증이 되고 울증이 심각할수록 광장의 조증은 커진다. 광장 안에서 우리는 부정의한 사회를 향해 정당한 함성을 내지를 수 있고, 우울한 일상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의 우울과 광장의 조증의 간극이 클수록 대중의 욕구를 자극하는 포퓰리스트에게 우리의 미래를 다시 저당 잡힐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청년의 무기력 뒤에 놓인 ‘싸그리 갈아엎고 싶다’라는 적개심을 ‘리셋(Reset)’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했다. ‘헬조선’이라는 조어처럼 “세상이 망해 버려야 한다”고 외치는 청년들의 절규를 과거 역사적 계보가 있었던 ‘혁명’도 아닌 ‘과격화’로 분석한 저자는 자신이 파괴되어도 좋다는 복수심을 우려한다. 저자는 또한 이것이 비단 청년뿐만 아니라 소외된 노인계층에게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광장에 선 또 다른 시민인 노인들의 서슬 퍼런 탄핵반대시위와 ‘묻지마 박근혜지지’ 또한 민주화세대에게 자신들의 삶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노인계층의 분노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또한 촛불집회에서 그 ‘리셋’ 너머로 나아가려는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박근혜퇴진’ 시국집회는 서로를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동료로 여기기 시작했다. 쓰레기 하나 없는 질서정연함이 치안에의 순응이 아니라 우리에게 시민으로서의 자치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정교한 퍼포먼스라는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다. 그러나 광장의 뜨거움이 클수록 불안한 일상의 우울은 더 크게 우리를 잠식한다. 하여 그는 한 호흡 멈추고 시선을 돌리자고 제안한다. “광장의 조증과 일상의 울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긴 시간감각으로 역사를 마주하자”고 말이다.

며칠 겨울다운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따가운 칼바람에도 전국의 광장은 뜨거움으로 가득했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텅 빈 광장의 쓸쓸함 뒤로 우리는 다시 외롭고 지루한 일상을 마주해야 한다. 광장의 조증으로 내 일상의 울증을 회피하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우리를 돌보자.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대출금에 숨이 가빠도, 하루살이처럼 기약 없이 매일을 살아도 저무는 석양의 붉은 노을과 찬바람을 견디는 앙상한 가지의 강인함, 그 아름다운 선은 매일 우리에게 대가없이 건네는 자연의 선물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맘껏 들이킬 수 있는 공기로 가끔 천천히 긴 호흡을 하자. 광장의 열기가 일상의 평안함으로 승화 되는 그 날까지서로를 격려하며 부디 우울한 우리의 일상을 잘 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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