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혹시 헛똑똑이 부모가 아닐까?
나는 혹시 헛똑똑이 부모가 아닐까?
  • 승인 2017.01.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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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학부모 교육 강사라는 직업상 평소 나는 많은 엄마들을 만난다. 강의실에서 그들은 내게 마음을 열고 아이의 문제를 상담한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의 손을 잡고 다독이다보면 내 직업이 부모교육 강사인지 위로해주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 소통이 불가능한 엄마들을 만난다. 이런 엄마들은 대체로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단 굉장히 교양 있는 말투를 쓴다. 아는 정보도 많고 들은 내용도 많다. 표정도 여유 있고 옷을 잘 입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 계속 얘기를 하다보면 이들이 내 이야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굉장히 사소한 건데 혹시 몰라서 물어본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들은 우리 아이는 괜찮은데 주변 친구 때문에, 형편없는 교사 때문에 아이의 문제가 생겼다고 믿는다. 자신은 정말 좋은 엄마인데 아이가 협조를 안 한다는 불만을 얘기하기도 한다.

간혹 주변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 꽤 심각한 문제를 얘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아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면 불쾌한 얼굴로 나를 못 믿겠다고 말하거나, 엄마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하면 그 정도는 다 안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주고자 하는 도움의 말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확인하고 돌아간다. 처음에는 ‘저럴 거면 왜 나한테 와서 물어보지?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왜 그런지 안다. 그들은 ‘헛똑똑이 부모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다.

김현수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밝힌 바에 의하면 ‘헛똑똑이 부모들’은 높은 지적수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그에 걸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특징을 보인다.

1) 자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2) 아이의 문제는 아이 탓이거나 남편 탓이다.

3) 자녀의 미래에 대해 늘 최악의 상태를 예견한다.

4) 아이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5) 잔소리와 훈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6) 자녀의 성적이나 공부에 포기란 없다.

7) 정작 부모 자신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8)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사교육 정보에 능통하다.

9) 늘 자녀를 위하여 희생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10) 체면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자녀에 대한 거짓말을 하곤 한다.

(김현수, 중2병의 비밀, 덴스토리)

헛똑똑이 증후군에 걸린 부모는 지적 수준이 높거나 학력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이 부모들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기보다 아이에게 더 많은 성취를 하라고 요구한다.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란 남보다 뛰어난 성취로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 아이가 학교나 일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 아이가 왜 저럴까? 무슨 문제가 있나? 어떤 어려움이 있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쩜 저렇게 내 체면을 깎는 짓을 할까? 자식이 저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너의 행동은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자식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남과 비교하고, 인정 없는 체벌을 가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아이의 행복, 인성, 공감능력, 자존감, 성취력, 도전정신, 심지어 성적까지, 인생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부모의 사랑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는 충고가 정말 아이를 사랑해서 하는 말인지, 다른 사람 보기에 창피해서 하는 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내가 헛똑똑이 부모 쪽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부모의 사랑 없이, 외로움 속에서 훌륭하게 성장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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