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창 생리대
깔창 생리대
  • 승인 2017.01.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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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살 돈이 없는 소녀들은 깔창에 휴지를 깔아 생리를 견뎠다. 어떤 소녀는 아예 결석을 하고 생리가 끝날 때까지 바닥에 수건을 깔고 누워 지냈다.

어느 가난한 나라의 소녀들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소녀들의 이야기다. 작년에 기사화 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깔창 생리대’는 우리나라 복지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기사 이후 성남시를 비롯해 일부 지자체에서 생리대 지원사업을 시작했고, 생리대 회사에서 생리대 후원이 이어졌다. 정부에서도 긴급 예산을 투입해 보건소에서 생리대를 지급하기로 했다. 스토리펀딩의 청소녀들에 대한 생리대지원사업은 큰 호응을 얻었다.

2016년 대구여성의전화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단편 ‘여자도둑’은 가출소녀가 초경을 겪으며 만나게 되는 끔찍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 돈이 없는 소녀는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훔치다 발각되자 달아난다.

편의점 남자는 소녀가 흘린 생리혈 자국을 따라 화장실에서 소녀를 찾는다. 남자가 소녀가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 엔딩 장면은 소름이 끼치면서도 오래도록 슬픈 여운을 남겼다. 영화는 가난한 소녀를 전혀 돌보지 않는 사회,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비정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20년 전 필자는 집 부근의 복지관을 통해 1년간 한 소녀에게 학습과 생활지원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6학년이었던 소녀가 초경을 맞았다. 언니가 없는 필자는 어머니에게조차 부끄러워 초경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필자에게는 초경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한 과정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소녀를 위해 생리대와 작은 케이크를 사서 초경을 축하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머니와 어렵게 살고 있던 그 소녀에게 생리대 값은 만만치 않은 돈이었을 것 같다. 매달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그날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담이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청소녀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가난한 청소녀들이 ‘깔창 생리대’를 해야 하는 사회에 대해 우리 어른은 부끄러움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일각에서는 비싼 생리대의 문제를 지적하며, 생리대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른 것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 물가가 9% 오를 동안 생리대 가격은 24%나 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펄프나 부직포 가격은 오히려 내렸다고 하니 인상요인에 비해 지나치게 가격이 오른 것이 사실이다. 일부 여성들은 생리대 가격인하 시위를 벌이며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고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여성계의 끈질긴 요구로 2004년 생리대에 대한 부가세가 부분 면세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생필품인 생리대에 대한 부가세를 완전면제하는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한 달에 36개 들이 생리대 한 팩을 쓴다고 가정할 경우 적어도 6000원에서 1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청소녀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생리대를 지급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문제도 크다. 보건소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수령대장에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적고 받아가야 했다고 한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생리대를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곳에서 지급받고 싶어 하는 청소녀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미숙하고 배려 없는 정책이다. 그나마 올해는 생리대 지급에 대한 정부예산이 어느 부서에서도 편성되어 있지 않다니 돈이 없는 청소녀는 다시 깔창생리대로 견뎌야 하는지 개탄스럽다.

가난한 청소녀들의 생리대 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지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생리대 문제는 생리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과 기본권’의 문제로 인식하여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여성의 건강권은 여성의 삶에 대한 사회·정치·경제적 맥락과 함께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누군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건강권이 침해 받지 않도록 정부, 기업,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어른들은 그런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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