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에 닭이 등장하는 이유 - 둘레의 일상이 모두 스승이다
세화에 닭이 등장하는 이유 - 둘레의 일상이 모두 스승이다
  • 승인 2017.02.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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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일전 음력 설날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진정한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정초가 되면 세화(歲畵)를 그려 서로 나누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세화는 그 해를 송축하고 혹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을 미리 막기 위해 그려집니다.

요즘에도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 친분 있는 사람에게 그림이 그려진 연하장(年賀狀)을 돌리듯이, 조선시대에도 세화를 돌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화에는 연하장과 부적(符籍)의 용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은 호랑이, 해태, 개, 닭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는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무덤 둘레석이나 부적 등에서 원숭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세화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까닭은 우선 그리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상징을 담기에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세화에는 반드시 그것이 주는 메시지가 강해야 합니다. 이 세화를 붙이는 장소에 따라 어느 정도 그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발톱과 매서운 눈동자를 지닌 호랑이 그림을 붙이는 장소는 집으로 들어서는 대문이었습니다. 대문에서부터 잡귀가 얼씬거리는 것을 물리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해태는 부엌문에 주로 붙였습니다. 부엌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재였기 때문에, 불을 먹어 없애버리라는 의미를 담았던 것입니다. 해태는 상상의 동물이지만, 물에서 사는 습성이 있어서 불을 제압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궁궐 문 앞이나 중요기관 입구에 해태상을 설치하였습니다. 지금도 광화문 앞에는 양편에 해태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경복궁 중건 도중 자주 화재가 일어나자, 그 원인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관악산의 뾰쪽뾰쪽한 바위 봉우리가 음양오행상(陰陽五行像)으로 볼 때 화체(火體)인 탓이라고 진단하고, 이 불덩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불을 먹어 없앤다는 해태를 조각하여 지키게 하였던 것입니다.

개 그림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문이었습니다. 창고에 도둑이 들면 짖으라는 의미에서입니다.

닭 그림은 중문에 붙이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이들 공부방에 많이 붙였습니다. 닭의 붉은 벼슬(鷄冠)이 관료사회의 벼슬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들이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입니다. 닭은 머리의 벼슬이 문(文)이라면 닭의 발은 무(武)를 상징합니다.

벼슬은 관모(官帽)를 뜻하였고, 발톱은 날카로워 무기를 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닭은 문무겸전(文武兼全)을 의미하였습니다. 또한 닭은 아침 일찍 울기 때문에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도 담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닭 인형도 따지고 보면 다산(多産)과 더불어 부지런히 자강(自强)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인간 의식의 한 원형(原型)이 아닌가 합니다.

고구려의 고분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동서남북의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사령(四靈)들이 망자를 지키는 수호신이었다면, 조선시대에는 호랑이, 해태, 개, 닭 등이 살아있는 사람의 집을 지키는 경보장치로 활용되었던 셈입니다.

세화를 여러 장 찍어내기 위해 미리 새긴 판목(板木)이 서울 구기동의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재질이나 상태로 보아 도화서(圖畵署)에서 제작하여 궁중에서 사용하던 물건 같다고 합니다. 삼성출판박물관의 설명에 의하면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도 채색된 조선 세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새해를 맞으면서 둘레의 일상이 주는 여러 의미를 우리 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하려 애썼습니다. 이는 보다 지혜롭게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우리 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둘레에서 과연 얼마나 많이 지혜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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