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손편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손편지
  • 승인 2017.01.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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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부국장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 백악관 집무실에 직접 쓴 두통의 손 편지를 남겼다.

8년간의 재임시절 소회를 담은 두통의 손 편지 가운데 한통은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겼고, 한 통은 후임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쓴 편지다.

그는 국민들에게 보내는 한통의 편지에선 ‘예스 위 캔(Yes, we can)’이라는 표어로 국민들을 격려했다. 나머지 한 통은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트럼프의 소개로 세상에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백악관 취임 행사 연설에 앞서 양복상의 왼쪽 안주머니에서 회색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이면서 “집무실에 갔었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남긴 편지를 발견했다”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 줘서 고맙다. 이 편지를 소중히 간직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 당선인을 위한 작별 편지는 남기고 떠나는 것은 오랜 전통”이라며 “그동안 터득한 것들을 후임과 공유하기 위해서 편지를 남겼다”고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는 당일 집무실에 후임자의 성공을 기원하고 개인적 조언이 담긴 편지를 남기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40대) 대통령이 조지 H. 부시(41대) 대통령에게 “바보들(Turkeys)에게 굴복하지 말라”는 메모를 남겼고, 4년 뒤 재선에서 떨어진 부시 대통령도 후임자인 빌 클린턴(42대)대통령에게 “당신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클린턴 대통령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남겼고, 43대 부시 대통령도 그의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에서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고, 큰 업적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기간 혹평에도 불구, 당선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6일 언론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은 변화의 후보였다.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또 다른 전임 대통령으로부터도 편지를 받았다. 지난 대선 공화당 경선에서 ‘허약한(Low Energy) 젭’이라고 조롱하고 낙마시킨 젭 부시 후보의 부친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건강 문제로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면서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부시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다.

미국 대통령들의 편지 릴레이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 온 그들의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서로 다른 소속 정당과 이념마저 초월하게 한 공통분모는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시선을 돌려 우리의 현실로 돌아오면 어떠했을까? 미국의 경우처럼 전직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에게 진심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아름다운 장면은 안타깝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재임시설 쌓은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고사하고 퇴임 후 대부분 갈등관계로 돌아섰다. 가까운 예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사상 초유의 탄핵국면까지 겪은 후 퇴임 후에는 새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대통령이 됐다. 이처럼 정권교체 때마다 파열음을 내는 것은 전 정권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하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 탓도 크다.

지금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국회의 탄핵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 까.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 대통령의 조언을 들으려고 할까.

더군다나 다른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경우에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결과가 조만간 결정될 전망이다. 이미 인용을 가정한 벗꽃대선(4말 5초)까지 거론되고 있다. 임기를 못 채우고 청와대를 떠나야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용되든, 기각되든 다시 한 번 정국이 요동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선 후임자를 위한 격려의 편지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음정권에선 그런 전통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상대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전제된 선진적인 정치문화가 정착될 때도 됐기 때문이다. 후임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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