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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예술에 담겨질 삶의 일면

기사전송 2017-03-13, 21: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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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강사
지난 밤 비바람에 진 줄만 알았던 개나리가 여명을 밝혔다. ‘혹 베어먼이 그려놓은 그림의 꽃은 아닐까?’ 하고 보았더니 스스로를 지켜낸 자연이었다. 가끔 라스코 동굴이나 피라밋의 벽화처럼 현실에 가상을 빗대곤 한다. 플라시보 효과(plecebo effect)를 경험하면 금상첨화다.

플라시보란 ‘만족스럽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위약(僞藥)효과 또는 가짜약 효과라고도 한다. 유사한 경우를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 헨리(윌리엄 시드니 포터)의 단편 소설『마지막 잎새』에서 ‘마지막 한 잎’은 죽어가는 존스의 운명을 돌려놓는다. 화가 베어먼이 그린 잎이 의사의 처방과 친구의 설득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존스의 눈을 감쪽같이 속인걸 보면 베어먼의 잎에는 드롱프뢰유(tromple-l‘oeil)기법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드롱프뢰유(눈속임)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감을 살린 생생한 묘사법이다. 17세기 네들란드 정물화에서 활발했고 그리스시대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됐지만 플라시보효과와는 별개다. 제욱시스의 포도송이가 새의 눈을 속인 것에 만족하듯 화가는 환영기법에서 긍정적인 효과만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법에 대한 유추는 자유이고 재미를 더한다. 다만 ‘마지막 한 잎’을 통해 삶의 희망과 희생의 숭고함을 그린 작가의 의도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오 헨리는 밤새 비바람 속에서 ‘마지막 한 잎’을 그려놓고 죽음을 맞이한 베어먼의 행동을 예술가의 무모한 일탈로 치부하지 않는다. 값진 희생으로 그린다. 동시에 예술(또는 예술가)에서 ‘삶’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예술가의 작품 속엔 다양한 삶이 담겨진다. 대구미술관 <선- 삶의 비용전>이 그 한 예라 할만하다. ‘아티스트 토크’에는 관련자들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작품으로 변모한 생활필수품 앞에서 보인 한 시민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괴리감이 없고 감정이입 되었다는 반응이다. 더하여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고 하니 그 시민은 예술작품에서 미의 규범이나 미학적 범주를 벗어나 미적 체험을 한 것이다. 한편 예술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임을 방증한다. 작가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초월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삶의 경험과 관심을 스토리텔링 했다. 그 중 토크에 불참한 유일한 작가, 그의 작품세계를 큐레이트와 기획자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화가도 뭐도 아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일 뿐이다.” 라고 한 그 작가는 2015년부터 절필을 선언했다고 한다. 소각하려는 작품 중 일부를 제자가 거둬 전시장에 걸었다는 후문이다.

절필을 선언하고 아티스트 토크도 거절할 만큼 단호한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세 가지 입장을 헤아려보게 한다. 먼저 미술관 전시를 간절하게 원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작가들의 이중적인 소외감과, 절필한 작가의 투철한 예술관과 삶의 철학, 그리고 전후사정을 살피고 절필한 작가를 초대할 만큼 신중을 기했을 기획자(또는 평론가)의 의지와 신념이 고려된다. 제백석(濟白石)(1860~1957)은 “그림이 사물을 너무 닮으면 속되고, 사물에 지나치게 어긋나면 눈속임이 된다.”고 했다. 작품과 자아 어느 한 쪽에 편중됨을 경계한 제백석의 예술관은 예술행위 그 너머를 주시하게 한다. 한편 묻혀있는 작가를 발굴해 작품의 진가를 읽어내고 공유하려는 기획자의 책무가 비춰진다. 이때 기획과 평론은 작품을 토대로 한 또 편의 작품이 된다. 진정한 작가와 신중한 기획자, 깊이 있는 평론가가 공존해야 할 이유다.

며칠 전 두세 차례 한국 땅이 흔들렸다. 연일 내리는 비는 쉴 기색이 없다. 비바람 속에서도 마지막 한 잎을 그려 준 베어먼처럼 이웃에 대한 연민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세상이 흔들려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지인의 굳은 결의가 곁의 삶까지 긍정적으로 방향 잡아준다.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베어먼과 같은 후한 마음이 넘친다면 윤리나 도덕 법규 따위는 먼 나라의 것이 되지 않을까. 사소한 삶조차 홀대하지 않는 정성이야말로 예술이란 그릇에 담고 싶은 삶의 진면목이 아닐까 한다. 혈맥을 넘어선 영혼의 유전자는 삶을 예술 안에서 하나로 연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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